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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Apr 23. 2024

묵묵하지만 단단할 수 있는 외로운 사랑의 형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리뷰


아키 키우리스마키 감독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이며, 2023년 12월 20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감독의 새로운 복귀작으로 프롤레타리아 시리즈를 잇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 노동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로맨틱한 제목과는 좀 다를지도 모를 잔잔한 이 사랑은 울긋불긋 조금씩 번져가고 있다. 현대 사회의 외로움과 소외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외로운 삶 속에서 새로운 관계.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안사, 공장에서 일을 하는 홀라파. 그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외롭고 힘든 상황을 하루하루 견디던 중에 활력을 더할 관계의 시작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 끝에 깊은 대화를 나누고 안사가 홀라파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거닌다. 하지만 홀라파가 번호가 적힌 종이를 잃어버린 탓에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두 사람에게 사랑은 사치인 듯 하루는 그들에게 매우 버거웠다. 마치 그때 나눴던 대화는 꿈인 듯 아득해진 찰나, 운명처럼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비극 속에서도 피어날 어떤 마음의 흔적.


솔직히 말하면 현실은 비극적이다.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사망 소식을 알리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쟁은 안사의 상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불안감이 전달된다. 사랑이라는 환상에서 전쟁이라는 현실로 끌어당기는 요소로서 존재한다. 왠지 모를 죄책감은 사랑이 배부른 사치처럼 여겨지게끔 만들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은 불안정하고 불의의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사랑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만큼 달콤했다. 이 수많은 어려움은 복합적인 문제에 더해 지치고 더 나아가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은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싫어했던 것을 쏟아붓는 장면은 이 영화의 결말이 더욱 궁금해지게 만든다.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어떤 기대감과 흥분감을 더한다.



외로워도 단단한 어른들의 성숙한 마음.


영화 속의 사랑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전쟁, 삶, 상황이 이들에게 있어서 사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계속 이어질 이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감정 표현이 많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끈끈함은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들의 무표정과 무미건조한 대화는 감정이 100% 전해지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사랑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분명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만남이 중점적임에도 불구하고 관계 사이에서 피어나는 감정 표현이 그다지 끈끈하지 않은 걸까. 충분히 복잡한 그들의 삶 속에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더하면 끊임없는 굴레에 빠질 것 같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관객들이 볼 수 없는 영화의 한 켠에서 나눈 대화가 그들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줬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들이 나눈 대화와 감정교류를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좀 어렵게 느껴진다. 다만, 이들은 타이밍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타이밍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관계가 더욱 명확할 수 있었다. 뭔가 무미건조하면서도 이 묵직한 사랑의 힘은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긴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였다.



사랑은 가을처럼 갈피를 못 잡고.


사랑도, 삶도, 현실도 명확하지 않듯 이 영화 또한 명확하지 않다. 영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영화의 설정은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사가 라디오를 듣듯 우리에게도 현재 세계의 상황을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미래 사회를 영화의 시점으로 두고 있지만 영화는 과거를 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일상과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현재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곤 한다. 과거에 머물고 있을 만큼 삶에 지쳐있지만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영화에 투영하고 있다. 이들의 사랑이 끝없는 어려움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겨내고 서서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통해 다른 것 또한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어도 그들의 실제 마지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추측하고 상상하며 그들이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바래져 버린 이 화면처럼 과거이자 현재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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