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눈물 나도록 반가운 레즈비언
나의 첫 레즈비언/양성애자와의 독대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퀴어 프렌들리한 도시 중 하나인 유럽 어느 대도시에서 일 년을 살 때, 옷가게에서 일하며 현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때 풀타임으로 일하기 위해 기나긴 면접을 마치고, 그날 처음 본 친구가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대도시였던 그곳에 도착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됐던 나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 신나서 같이 펍으로 향했다. 술을 마시면서 그 친구는 자기는 양성애자이고 나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 그 이후로도 일하는 시간이 겹칠 때마다 나를 따라다니면서 니 옷 예쁘다, 너 뭐 잘한다라는 칭찬을 하며 나에게 대시했고 나는 같이 일하던 게이인 친한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며 조언을 청했다. 그 친구는 나는 너한테 관심 없다고 직설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 옷가게에서 일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피해 다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녀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meetup을 찾아다녔고 우리 집 주변 공원에서 주말마다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가기 시작해 거진 1년을 매일 가며 그 친구들과 친해졌다. 친해지면 서로 파티도 초대하고 같이 클럽이나 바에 놀러 가고 했다. 그들 중 70프로는 퀴어였다. 그중 기억에 남는 40대였던 한 친구는 남편과 결혼해서 아이도 있지만 뒤늦게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남편에게 털어놓았고, 남편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되 원하는 대로 여자를 만나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정말 충격적이었다. 오픈 레즈비언이 다수였던 그 그룹에서는 자유롭게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queerness를 뽐냈다. 자연스레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고 서로 여자를 소개해준 썰을 푼다. 나의 시야가 완전히 열리는 일 년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시간이 흘러 나의 성지향성을 알게 됐을 때 내가 좋아하는 동호회를 나가며 한국에도 수많은 레즈비언들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숨겨져 있지만 언제나 존재해 왔던 그들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장본인이라면 알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부터, 사회생활만 포커스 되면 좋겠지만 나의 사사로운 개인사를 묻는 회사 동료들, 그리고 더 넓은 어느 세상에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를 숨겨야 한다.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끊임없는 자문자답은 그들과 굳이 심각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많이 해결이 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다른 레즈비언과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호회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연락을 쭉 주고받고 있는 나의 지인과 했던 이야기가 있다. 참고로 그녀와 나는 살아온 환경이 상당 부분 비슷하다.
누군가는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치만 여태까지 항상 사람들이 일컫는 성공의 궤도를 따라오고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라고 칭해지며 항상 칭찬을 들으며 살아왔지. 그런데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 누군가는 레즈비언이 '되었다고' 할 사실이 마치 그 궤도에서 내가 추락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
그렇다. 그녀와 나는 비교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스타일이며 흔히 말하는 정상성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악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상담사가 되어 이러한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나누며, 항상 마지막은 '그래도 우리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잖아 그렇지?'라고 끝난다. 그녀와 우스갯소리로 몇 년 후 레즈비언 지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성혼선언을 하듯 동반자를 선언하고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도장을 찍어주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퀴어의 굳이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하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