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lanie Nov 11. 2024

레즈비언 상담사와 상담을 시작하다 (1)

한 줄기 빛

Mental health를 중시하는 미국 문화가 흔히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개그 소재가 되곤 한다. 걔는 어떤 상황이니까 건드리면 안돼라든지 모든 미국인들은 적어도 하나의 멘탈 이슈는 갖고 있을 것이라든지. 미국에 처음 와서 주변에서 상담센터를 많이 다닌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갈지 말지 수많은 고민 끝에 드디어 상담센터를 방문하게 됐다. 한국에서 나의 성지향성 문제로 힘들었을 때 인터넷에 lgbtq 상담을 하는 곳을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은 용기를 내지 못하고 가지 못했던 나의 과거가 생각났다.


족히 40명의 전문 상담사가 있는 이 상담센터는 크게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licensed psychologist, licensed mental health counselor로 나뉜다. 그 중 10명이 lgbtq 전문 상담사이다.


처음 방문은 워크인이라 무작위로 상담사가 배정되고, 20분 정도의 짧은 대화 후 앞으로 individual therapy를 할지 group therapy를 할지, 아니면 여러 리소스를 소개받을지 결정하게 된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대화를 시작한 상담 세션은 처음이라 20분으로 짧았지만 나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시간이었다. 너의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첫 질문에 I'm a lesbian으로 시작한 나 스스로가 뿌듯하기도 했다. 엄청난 해결책을 원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퀴어로서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마음으로, 눈빛으로, 말로 느껴져서 따뜻한 위로가 됐다. 아웃팅을 당할까 걱정하는 나의 마음을 바로 이해하고 so you feel trapped라는 말을 해줬을 때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개인 테라피를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두 번째 상담센터를 방문했을 때, 새로운 상담사 사라를 만났다. 본인도 레즈비언이고 젊은 레즈비언 여성들과 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몇 걸음 걸어서 센터에 가면 이렇게 퀴어프렌들리 한 상담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미국에 사는 것을 감사하게 느낀 순간이다.


사라와의 세션을 통해 배우고 얻게 된 것을 나눠보고자 한다.

1. 퀴어 커플 사이에서는 각자가 성지향성을 인정하는 어떤 지점에 있는지에 따라 갈등상황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사라가 설명한 단계는 인지 및 견뎌내기 (be aware & tolerate) - 인정(accept) - 프라이드 (자신의 지향성에 대해서 자랑스럽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단계) - 통합 (synthesis; 자신의 정체성 및 지향성을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에 통합시킴으로써 퀴어로서 완전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단계) 이렇게 나눠진다. 사라는 나에게 pride를 넘어 synthesize 하고 싶어 하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2. 상담사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떠한 판단도 내 선택에 대한 종용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내가 한 말에서 내가 스스로 주목해야 할 지점을 알려준다.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걸 원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준다.

3. 어떨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을 때, 기약 없는 미래만 바라보며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을 때, 나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게 나를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아서 결정하는 게 아닌,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정하는 것이라는 사라의 말이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줬다.

4. 나의 성지향성이 tolerated 되는 삶이 아닌 accepted 되고 loved 되는 사회에 살아가고 싶어 하는 나의 욕구를 정확히 진단해 줬다. 한국에 사는 많은 나의 퀴어 친구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곳에서 어찌 보면 도망쳐온 나의 과거를 생각했을 때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현재 미국은 트럼프 당선이 되고 분위기가 아주 쑥대밭이다. 미국에 사는 퀴어들은 분노하고, 가히 위협을 느낀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우리, 어떠한 정치적인 발언이나 낌새에 위협을 느껴야 하는 우리는 이럴수록 더 연대해야 한다고 느낀다.


사라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상담 세션에서는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레즈비언과의 연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