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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니니 Sep 26. 2022

25. 난 언제나 아무거나

 부모님이 뭐가 먹고 싶냐고 물을 때 나는 주로 '아무거나'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 것도 있고 또 다른 이유는 어차피 정답이 정해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명절에 부모님이 집에 갔다. "아들 뭐 먹고 싶니?"라는 질문에 "저는 피자요."라고 한다고 피자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차피 식탁에 올라 내 앞에 나오는 음식은 명절 음식이다. 나는 명절 음식도 괜찮다. 그래서 아무거나 라고 대답한다.

 나는 왜 이렇게 대답할까 고민해봤다. 이건 나의 어린 시절부터 심긴 프로세서였다. 좋게 말하면 프로그램된 조금은 직설적으로 말해서 가스라이팅을 당해 온 것이다. 엄마는 내가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것을 싫어한다. 명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길 원하지만 엄마의 정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거절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나를 거절하기 위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묻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가족끼리 외식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초등학교 옆에 작은 상가 지하에는 경양식집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곳을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등하교하며 매일 같이 보이는 경양식 집에서는 종종 맛있는 튀김 냄새가 올라오기도 했고, 친구들이 그곳에 다녀왔다고 자랑이라고 하는 날에는 가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쳐 올라오곤 했다. 저곳의 돈가스는 무슨 맛일까 항상 궁금했다. 마침 가족 외식이 있는 날이었다. 온 가족이 차에 타고 외식의 즐거움을 안고 출발을 했다. 아빠가 물어보셨다. "뭐 먹을까?"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돈까~~~ 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애 같이 무슨 돈가스야?!"였다. 아니 초등학교  5학년이면 이제 한국 나이로 12살이다. 나는 애였다. 12살의 나는 족발, 보쌈, 삼겹살, 돼지갈비보다 피자, 치킨, 콜라, 돈가스가 더 좋은 나이였다. 이 날은 돈가스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돈가스를 먹자고 우겼고 이날의 외식 분위기는 아주 똥같이 됐다. 결국 부모님은 부모님이 원하시는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셨다... 무거운 마음으로 돼지갈빗집에 도착을 했는데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그날 돼지 갈빗집은 휴무였다. 인터넷 지도와 포털 사이트가 없던 90년대에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냉랭한 분위기의 차를 타고 주엽역을 한 없이 돌아다녔다. 무엇을 결국 8시가 넘은 시간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문이 열려있던 경양식 집에 들어갔다.

 지금이야 양식보단 한식을 좋아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빠는 왜 불혹의 나이에 이제 막 10살을 넘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 왜 우리에게 한 번 져주고 입맛에 안 맞아도 맛있는 척 먹어줄 수 없었던 걸까. 나에겐 이런 기억이 많다. 엄마와 아빠도 첫째인 내가 육아에 있어서 처음이었을 테니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을 인정한다. 지금처럼 육아와 양육에 대한 tv 프로그램이 많지도 않았을 때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이제는 부모님도 나를 이해해야 된다.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된 내가 말하는 '아무거나'는 나의 삶의 증거라는 것을.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삶의 흔적이라는 것을.

 어떤 음식은 애 같아서, 어떤 음식은 밥이 안돼서, 어떤 음식은 본인이 싫어해서, 어떤 음식은 준비가 안되어있어서 안된다고 하면서 선택은 나한테 하라고 한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나는 '아무거나'를 고른다. 캐나다에 있는 지금 선택 하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하다 보니 너무 좋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먹기 싫은 것은 접시 한 켠으로 살포시 치워놓는다.(하지만 거의 없다.) 1차원적인 욕구에 집착하진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선택을 최대한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지금은 나의 인생의 주체가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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