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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현 Oct 04. 2023

<얕은 지갑, 깊은 와인> 전자책 출간 소식


냉장고에서 소비뇽블랑을 꺼냈다.

그저께 아내가 마시고 반 병 정도 남은 와인이다.


정말 거의 10년 만에 여의도 한강공원에 다녀왔다. 아내는 잔디밭에 앉아 소금집 잠봉뵈르에 와인을 즐겼지만 구내염 환자였던 나는 아들이랑 돈가스만 (겨우) 먹었다. 한 모금 마셔봤지만 할 짓이 못되더라. 와인의 신맛이 강할 때 보통 ‘날카로운 산도’ 같은 표현을 쓰는데, 목구멍이 헐어버린 나에게는 거의 난도질에 가까운 산미였다. 부럽다, 한강에서 와인이라니. 크으!


와인은 여의나루역 근처 주류샵에서 샀다. (촌스런 경기도민은 한강공원 편의점에 와인이 없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행히 냉장고에 아주 칠링이 잘 된, 가격까지 적당한 뉴질랜드 소비뇽블랑이 있었다. 바로 겟.


계산대 옆에는 피크닉 하는 손님들을 위한 저렴한 와인잔들이 쌓여있다. 플라스틱잔 1천 원, 유리잔 2천 원. 집에 돌아갈 때 불편할 게 뻔하지만 주저 없이 유리잔을 골랐다. 내가 마실 와인도 아니었지만 이왕 마시는 거 맛있게 마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리잔이 정말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플라스틱잔은 용납할 수 없다.


다행히 아내도 흡족해했고, 연신 “음~!”을 외치며 아주 맛있게도 마셨다. 한병 다 비우실 기세였으나 안전한 귀가를 위해 말렸다. 그때 남은 와인을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한강공원에서 산 아이스크림 모양 네온사인. 6세 아들 픽.


진심으로, 하지만 무겁지 않게. 여전히 그렇게 와인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소식이 조금 늦었지만, 지난 8월에 전자책을 출간했다. 이 매거진에 버려져 있던 세 편의 글을 보고 연락 주신 에디터님 덕분에 총 서른한 편의 글을 써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엮어 난생처음 책이라는 것을 내보게 됐다. (매거진에 있던 글들은 책에 포함 되어있기 때문에 모두 내렸다)


쓰기 위해 마시고, 마신 김에 쓰기도 했다. 어쨌거나 와인과 깊고 가깝게 함께 했던 몇 달이 즐거웠다. 지식 측면에서는 딱히 더 나아간 게 없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내 마음에 대해 더 깊이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매개가 와인이었다는 것이, 선천적인 허영심이 풍부한 나로서는 나름 만족스럽다. 후후.


모자란 글이지만 와인, 또는 다른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기는 분들에게 많이 읽히길 바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속의 구절로, 소심한 홍보를 마친다 :)


코르크를 여는 설렘부터 와인 잔 바닥이 보이는 아쉬움까지. 그 짧지만 기분 좋은 낭비의 매력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상을 능숙하게 다루고 싶은 누군가에게 나는 주저 없이 와인을 권한다. 아마 후회할 일은 없을 거다. 고작 5년 차 된 홈와족의 구구절절한 설득이 아니라, 수천 년 넘은 역사가 보장하는 믿을 만한 제안이니까.

그래서 나는, 당신도 와인을 마셨으면 좋겠다.

<얕은 지갑, 깊은 와인> 에필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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