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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mundus May 31. 2021

미얀마와 광주의 5월 - 민주주의와 평화를 염원하며

미얀마 평화 염원 미사에 참례하고서

어느덧 5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모두 평온하고 편안한 한 달 보내셨길 바랍니다.


5월이란 단어와 계절은 참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고, 스승의 날엔 그간 가르치고 인도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고, 또 추위가 풀리고 점차 따뜻해지는 날씨에 괜스레 마음도 들뜨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꽃 피고 새싹 돋고 상쾌한 바람이 불 때면, 계절이 주는 축복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5월의 계절처럼 따뜻하고 푸릇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지구 저편에서 전해져 오는 미얀마의 소식을 들으면 5월의 기쁨도 무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 속에서 꽃 피고 식물 자라는 것을 보며 계절을 만끽하다가도, 포털 사이트나 페이스북, TV 뉴스를 통해 미얀마 쿠데타와 시민들의 저항 소식을 접할 때면, 나의 일상과 미얀마의 현실 사이에 괴리로 인해 가슴 한이 무거워집니다.


들려오는 미얀마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의 소식들은 어둡고 절망적인 듯만 합니다. 반군부 저항운동에 참여한 자식을 대신해 부모가 대신 징역형을 살고, 집 안팎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군경의 습격에 희생당하며, 학교의 학기는 6월에 시작되는데 학생의 90%가 쿠데타 정권 하의 교육을 반대하여 등록을 거부하고 있어, 학생들의 교육권 또한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시민들의 평화 시위는 군경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고, 동료 시민들은 연행·구금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무장 투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평화는 힘이 없는 듯합니다.


지난 3월엔 미얀마 군경 앞에서 무릎을 꿇음으로써 시위대의 총부리를 저지한 어떤 수녀님의 소식이 희망처럼 전해지기도 하였으나, 얼마 전엔 군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성당에 피신한 시민들이 성당에 쏟아진 폭격으로 인해 사망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선 신부님들이 보안대에 연행되고 군경이 추모미사를 막기 위해 성당을 폐쇄하려는 상황에서도, 계엄 당국은 천주교 미사만큼은 막지 못해 매주 추모미사가 봉헌되었던 것과는 상반되는 현실입니다. 성당마저 군부의 폭격 대상이 되고 있다니 무척 충격이 큽니다.


2021년 5월의 미얀마와 1980년의 5월의 광주는 많이 닮은 모습입니다. 당시 광주와 현재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시위대와 군경의 사진이 얼핏 보았을 때 다른 점을 거의 찾을 수 없기도 하고(하단 링크의 기사 참조), 시·공간만 다를 뿐 군부 쿠데타 이후 계엄 정국 하에서 민주화를 염원하며 저항하는 시민들 또한 같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한국의 현실과 저 먼 곳 미얀마의 현실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통시적 흐름 위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얀마와 광주의 기록을 찾고,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습니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민주적 논의에서, 주인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영역이 존재하고, 민주주의는 도달해야 할 과제로서 계속해서 남아 있는데, 하물며 미얀마 사람들이 갖는 민주화에 대한 희망과 염원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 것일지? 미얀마 시민들의 염원과 1980년대 민주화,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한국 시민들의 모습은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지? 미얀마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서 희망을 얻는다고 하는데, 미얀마 시민들의 염원이 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과연 나는 얼마만큼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망하고 기도하고 있는지?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평화를 염원하고,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것만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무력하고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1980년 광주의 기록과 기억이 1987년 한국 민주화의 발판이 되었고 현재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기도하고,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들은 미얀마 민주화의 발판이 되고, 또 다른 평화와 민주화에 희망을 전할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당장의 현실 속에선 힘이 없는 듯 보일지 모르나, 기도와 염원이 모이고 쌓이면, 평화와 민주주의라는, 거스를 수 없는 강력하고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진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가져 봅니다.


각자 계시는 곳에서, 미얀마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도 늘 있는 자리에서 기도하고 염원하고 있겠습니다,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비도 내리고 흐린 하루가 될 것 같지만, 저마다 계신 곳에서 평화를 염원하고 희망하며, 따뜻하고 뜻깊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천교구 성모당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603&fbclid=IwAR0CNrS2_1ABw_g9meBrVHr0_ZCs67zas2X8aVcJtCj5NPyZanhONztOM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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