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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mundus Mar 02. 2021

저녁의 박명

다시 여기 노을빛

샤를 보들레르, 「저녁의 박명」 (『파리의 우울』, 문학동네, 2015) 中


겨우내 남쪽으로 내려가 있던 해가 돌아왔다. 창밖엔 한동안 저녁놀의 잔상만 은은하게 남아, 짙은 태양과 주위의 노을빛이 무척 그리웠는데. 계절이 바뀌고 마침 저녁 하늘이 맑으니, 노을빛이 다시 방 안에 비친다.

몇 주 동안 논문 준비하느라 마음이 참 답답하고 조급했었는데. 저무는 태양과 노을이 자아내는 저녁의 박명에 마음이 차분하고 편해져,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노을빛에 물들어 몽롱해진 책상 주변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필터를 따로 쓰지 않아도, 노을빛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여기 앉아 있는 순간들이 새삼 이토록 아름다운 순간들이었구나, 싶은.

오랜만에 다시 노을을 마주하니, 노을을 바라볼 적마다 늘 겸손해야지, 감사해야지 다짐했던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해가 다시 돌아왔으니, 자주 겸손하고 감사해야지. 그렇게 아름다워야지.

논문도 공부도 아름다워야 할 텐데. 노을빛 머물다 간 자리에 좋은 기운 스며들면 좋겠다. 오래오래 바라보고 오래오래 앉아 있어야지.


계절이 바뀌자 태양이 돌아왔고, 방 안에는 다시 노을빛이 깃든다.
기분도 기운도 모두 좋아서. 브이,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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