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신 어머님을 위해 기도드리며 걸은 길
지친 순례자여, 걸음을 멈추고 쉬어 가게나
8월15일. 광복절이자 교회의 큰 축제일 중 하나인 성모승천대축일. 스페인 전역이 축제로 들썩거리는 날이다. 성야고보 축일인 7월25일과 함께 여름철 가장 큰 축제일 중 하나다. 이 날을 어디에서 보내야 잘 보내는 것일까? 나는 사모스의 수도원에서 조용히, 경건하게 이 축제일을 보내기로 했다. 무엇보다 밤 새 산을 넘은 우리는 사리아까지 가기에는 너무도 지친 순례자들이었다.
[8.15 금요일 / 걸은지 29일째] 안개속 오세브레이로를 밤에 지나왔지만 그 작은 마을은 밤에도 얼마나 아름답던지. 낮에 못 본 것이 많이 아쉬운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달빛 속에 고요히 잠든 오세브레이로와 산로케 순례자상을 볼 수 있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깊은 단잠에 빠져든 작은 마을을 몇개나 더 지나쳤을까. 폰프리아(Fonfria)와 오비두에도(O Biduedo)를 지나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이탈리아 등지에서 온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길을 떠나려 할 때에 한국의 집으로부터 안좋은 소식이 전해져 왔다.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다. 벌써 며칠이 되었지만 순례길을 떠난 막내아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어머님의 당부로 가족 모두가 나에게는 시치미를 떼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안정을 찾으신 이제서야 알려준 거다.
순례길에서 만난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 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야.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는 이 길을 함께 걷게 되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신 어머님은 나의 이 길을 함께 걷고 계셨던 것이다. 나보다 더 고통스럽게.
트리아카스텔라의 골목 끝에서 순례길은 또 한번 갈라진다. 보통은 산실(San Xil)로 향하는 우측 길을 택하지만 우리는 두세시간 정도 더 걸어야 하는 왼쪽의 길을 택했다. 사모스(Samos)의 대수도원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리아강변에 요새처럼 서 있는 사모스 수도원은 까미노의 또다른 상징이기도 하니까.
사모스 가는 길은 벼랑으로 장식된 산 사이로 나있다. 구불구불 도로를 따르다 보면 오래된 마을들과 목장과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마을을 지나 어느 순간 발 아래 사모스 수도원의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모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기부제이다. 식사는 제공하지 않는다.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뒤 수도원 내부를 구경했다. 마을은 아주 작은 편이라 둘러보는데 한시간이면 충분했다.
알베르게의 방명록에는 먼 길을 돌아가는 순례자들의 마음가짐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녁에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아름다운 성가를 들으며 어머님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차분하고 경건하게 보낸 대축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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