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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Mar 23. 2016

스페인에서 별보며 노숙하기

오레보레이로를 지나 K55.5 표지 앞에서 비박

https://youtu.be/xgvckGs6xhU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촉촉한 땅바닥, 앞서 간 발자국, 처음 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8.17 일요일 / 걸은지 31일째] 꽤 긴 거리를 걸었다. 포르토마린에서 낮시간을 실컷 즐기고 미사까지 드렸다. 바르에 앉아 카페콘레체 한잔을 마시며 사람구경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오후 세시 무렵 길을 나섰다. 이제 저녁 시간에 걷는 것이 익숙해졌다. 새벽에 순례길을 출발하던 지난 20여일의 기억들이 흐릿해져 가고 있다.

포르토마린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89km 떨어져 있으니 이 날 비박지였던 K55.5까지 34km 정도를 걸은 셈이다.

요며칠, 지난 8월10일의 슈퍼문과 함께 2014년 최고의 우주쇼라는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펼쳐질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었다. 어제가 절정기라고 했는데 포르토마린에서는 단 하나의 유성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레보레이로를 지나 K55.5 Magdalena 라고 쓰여진 표지 부근. 매트리스 위에 침낭, 그리고 배낭을 베개삼아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잤다. 원래부터 비박을 계획했지만 준현군을 만나는 바람에 그의 텐트에서 잠을 해결해 왔으니 그야말로 첫 비박인 셈이다.


기울어 가는 달, 하늘 가득 뿌려진 별. 아이폰을 열어 김동률의 '출발' 을 틀어놓고 가사를 음미하다가 중간 반주가 휘몰아치는 부분에서 한마디 툭 던졌다. "여기쯤에서 유성이 떨어져 주면 좋은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말로 커다란 유성 몇개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유성에 대한 환호이기도 했지만 순간적인 예지력(?)에 대한 감탄이기도 했다.

그 별 것 아닌 우연 덕분에 이 날 밤 길가에서의 노숙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은하수의 길이라고도 불리운다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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