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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선 May 12. 2023

저희 집은 옥탑방인데요. (2)

옥탑방 플리마켓 - 두 번째 이야기

맑아오는 하늘!

그럴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통 ‘내 책이랑 엽서도 전시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불만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만 가득한 나를 옆에서 톡톡 치며 달래준 존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나의 손님들, 나의 지인들이었다.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선물을 사 들고는 잊지 못할 추억이라며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내가 조금 더 철저히 리허설했다면 내 상품을 전시를 못 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반성했다. 그리고는 후회하지 말고 첫판부터 보스를 만난 셈 치고 다음번에 잘하자고 결론 내렸다.

나는 쉬는 시간을 틈타 나의 ‘블라인드 북’과 엽서를 전시했다. 나는 내 삶의 한 시점에 영향을 준 책들을 내가 찍은 엽서와 함께 포장해 작은 메모만을 붙여 팔았다. 판매를 결심하기 몇 주 전,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이익에 대해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권당 1,000원 채 되지 않음을 깨달았기에 나는 책들을 선물에 가까운 마음으로 전시했다. 단지 책 표지에 적을 메모에 신경을 곤두세워 고민했다. ‘엄마가 해주는 위로’, ‘자연에서 치유받는 사람들’ 등등. 그런 마음이 닿았는지 세 명이 내 책을 구매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 왔다.

그렇게 한바탕 1부가 막을 내리고, 2부가 시작되었다. 기존에 옥탑 마당과 옥상을 이용할 예정과는 달리 바람이 세게 분 탓에 우리는 옥상을 아예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옥상에 올라가는 것이 거의 벌칙 수준으로 추웠기에 모두 눈치를 보며 눈을 피했다. 이에 옥탑 마당에 최후의 만찬처럼 테이블을 배치해 앉았고, 정말이지 파티가 열렸다. 사람들은 소주와 맥주를 끊임없이 시켰고 닭똥집과 가리비 라면을 칭찬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적당히 취한 누군가가 18년 산 위스키와 레드와인을 꺼내 들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배가 든든히 찼는지 환기가 필요한 시점에 누군가 기타를 잡아들었는데, 다름 아닌 기타리스트 규현 오빠였다. 규현 오빠와 싱어 유나 님은 금세 자리를 잡더니 ‘L.O.V.E’를 부르기 시작했다. 계단에 걸터앉은 채로 분위기를 휘어잡은 그들의 뒤를, 나와 재민이 이어 잡았다. 우리는 우리의 대표곡인 ‘Close to you’를 불렀고, 이후 하나둘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와 한 곡씩 뽐냈다. 어떤 이는 10cm의 노래를 신명 나게, 어떤 이는 잔잔한 사랑 노래를 아련하게 불렀다.

모두가 취해있었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평소에는 무표정에 미소만 잔잔히 띠던 사람들도 밤 9시가 넘어가니 잇몸이 만개하고 장난스러운 말을 주고받으며 소리 내 웃었다. 우리는 몇 시가 되었는지, 막차는 언제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이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11시가 넘어가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승호가 스무 명이나 되는 남은 인원을 통솔하여 근처 이태원 술집으로 데려갔고, 나와 재민은 남아 뒷정리를 했다. 그들은 술집에 클럽까지 거쳐 첫차를 탈 때쯤 헤어졌다고 한다.


글을 쓰는 이 시점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실감하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미안하다는 마음보다는 고맙다는 마음을 더 가질 걸이라는 생각이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그날에 잔뜩이나 예민해져서는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마음만 들었다. 한 달씩이나 준비한 이 행사가 왜 이리도 정신없어야 했는지 억울한 마음도 잠시, 일찍 와서 정신없이 구경을 시작한 손님들과 촉박하게 준비했던 셀러들 그리고 다른 일을 하느라 준비한 상품을 전시조차 하지 못한 나에게 미안했다. 당시에는 정말이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지인들은 오히려 바쁜 우리를 이해하며 불편한 내색 하나 없이 즐겨주었고, 셀러들도 발 벗고 나서서 우리를 도왔다. 쌓인 설거지를 처리해 주고 서빙을 해주고 부족한 물건을 사다 주고 나서 또 도와줄 일이 없냐며 물었다. 그렇게 4월의 마지막 날이 끝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공허함은 없었어?‘ 우산을 찾으러 온 규현오빠가 물었다. ‘전혀!‘ 나와 재민은 합의라도 한 듯 동일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와준 손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그리고 그들이 우리 주변에 있음에 든든함을 느꼈다. 4월 마지막 날을 장식한 이 행사가 5월이 된 지금까지도 은은하게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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