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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리 Jan 25. 2021

신라면을 따라간 길에서,

여행에서 발견한 가치.

    


       2012년의 나는 12살이었고, 첫 번째 장거리 비행이자 첫 번째 유럽 여행이었다. 촘촘한 여행을 계획하신 아빠를 따라 이리저리 최대한 많은 것을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많은 돈을 들여 여행을 가는 것이기에 그렇게 열심히 둘러보고 오는 것이 나도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작은 보폭으로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런데, 여행 2일 차부터 잠에 들면 꼭 두세 시간 후에 잠에서 깨게 되었다. 코피 때문이었다. 하루의 일정이 고되었다는 것을 내 몸이 스스로 나에게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신기하리만큼 매일같이 코피가 흘렀다. 그렇지만 오히려 열심히 많은 것을 알고 왔다는 증표라고 생각했고, ‘내 몸이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보람찬 여행을 하고 왔다고 생각했다.


    4년 뒤, 2016년에 또 한 번의 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기대되고 한편으론 긴장도 되게 하는 존재인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어떤 옷을 입어야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필요한 짐들을 챙겼다. 첫 번째로 여행할 곳은 헝가리였다. 나의 발이 부다페스트의 공항에 닿는 그 순간부터는 대략 열흘간 펼쳐질 수많은 일정들을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며칠간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경험으로 여행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유명한 작품들을 볼 때면 경이로움에 몸이 떨리기도 했다. 그런데,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것을 보는 것이 좋기는 한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딘가 모르게 여행이 마냥 즐겁기보다는 힘이 들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헝가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이동했다. 마찬가지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알찬 여행을 했다.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신라면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한국 음식을 안 먹은 지 꽤 시간이 지났던 터라, 신라면이 몹시 반갑고 오스트리아를 떠나기 전에 꼭 먹겠다고 다짐했다. 가족들에게도 이야기를 했고 모두가 동의를 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의 마지막 식사 장소를 정할 때까지도 그 음식점에 간다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신라면을 먹기로 한 것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냥 다른 곳에서 먹자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서운한 마음에 혼자라도 그곳에 가서 먹게 해달라고 했고, 부모님은 못 이기겠다는 듯이 보내주셨다. 잘 가서 먹고 올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영어도 쓰지 않는 이 나라에 혼자 길을 나서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한 발씩 내디뎠고, 식당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그곳에 반가운 신라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혼밥을 무려 오스트리아 빈에서 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아직도 그 식당의 이름이 기억날 만큼 인상적인 일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라면을 맛있게 먹고 이제는 돌아가는 길도 알고 있겠다, 거리의 분위기와 여유를 느끼며 길을 걸었다. 내가 걷는 속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고,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서 내 발도 함께 머무르며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행복감이었다.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여행의 피로감이 한 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나는 이다음의 여행지에서도 이 행복감을 느끼겠노라 마음먹었다. 가족들을 만나서는, 신라면을 찾으러 떠났던 일련의 과정이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음 장소에서는 각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나누는 것을 제안했다. 공교롭게도 다음 행선지는 교외에 위치한 작은 도시라서 부모님도 큰 걱정 없이 알겠다고 하셨다. 체코의 한 동화 속 마을 같은 곳, 체스키 크룸로프였다. 아침을 먹고, 각자 구경하고 싶은 것을 찾아 떠났다. 나는 여유롭게 집 앞의 광장을 걷고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그 장소와 하나 되는 기분을 느꼈다.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행복을 다시 한번 느낀 것이었다. 각자의 보폭이 다르듯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의 속도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나의 삶은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가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꾸준하게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삶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해낸 발 빠른 성공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을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뉴욕은 캘리포니아보다 3시간 빠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뒤쳐진 것은 아닙니다.” 여행을 통해서 이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꼭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고, 더 뛰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갉아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고, 잊지 않고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일상에서도 감사할 줄 알게 되고 의미를 찾게 해 준 여행의 그 순간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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