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에 가지 않았다. 폭력 피해자인 엄마를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로 가정폭력 상담실에 전화를 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집을 나오길 권유하던 상담사의 애정 어린 목소리보다, 내가 가정폭력을 목격했기 때문에, 커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내가 될 것이란 말이 뇌리에 남았다. 이미 과거와 현재가 끔찍한데, 미래까지 끔찍하리란 저주 같아서, 가정폭력 상담실을 멀리하고 싶었다. 몇 년 후 나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다시 몇 년 후 상담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들었던 말을 정확히 마주했다. 폭력의 대물림 이론이다.
이론이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연결한 것이다. 즉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가 폭력을 가하거나 피해를 당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아동이 폭력 가해와 폭력피해를 학습하여(사회학습이론) 어른이 되어서도 대를 이어 폭력을 경험한다는 이론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사회과학도이자 상담사로 살면서, 이론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이론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론은 개인을 설명할 수 없고, 예측할 수는 더더욱 없다. 중학교 때 전화상담실 선생님은, 그저 배운 이론을 내게 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폭력의 대물림 이론이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절망이자 저주 어린 예언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상담사가 된 지금 가끔 생각한다. 지금 내가 상담사로서 전화를 받는다면, 무어라고 전할까. 나는 어린 나에게 집을 나오기를 원한다면, 돕겠다고 말할 것이다. 집에서 나올 수 없다면, 그래도 우리가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상담실에 전화를 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니, 분명 네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과 폭력과 폭력을 연결하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아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나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은,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