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꿈 Sep 02. 2022

탈모,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어깨 정도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단발로 싹둑 잘랐다. 보는 사람마다 어떻게 과감히 변신했는지 물었다. 나는 "탈모 때문에요"라며 웃었다. 정말이다. 탈모 때문에 잘랐다. 그리고 이제는 '탈모'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탈모를 이야기해야겠단 생각은, 남은 머리카락에게 고마움을 느낀 후로 자연스레 생겨났다. 당시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병원 수련을 받던 중이었는데,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내 내담자들에게 상담에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어디에도 탈모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니 언행불일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담자들이 부럽기도 했다. 내담자들은 상담에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더 이상 문제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탈모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이야기할 대상과 기회를 골랐다.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친구는 깜짝 놀랐고,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주변에 탈모 이야기를 한다고, 탈모가 좋아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간 탈모 때문에 느꼈던 고립감과 외로움, 부적절감이 줄어들었다. 친구가 내 이야기를 따라 아파하고 속상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친구 앞에서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하루는 연구실 맞은편에 앉은 선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탈모 심해져서 상담 못하면 어쩌지? 내담자들한테 부끄럽고, 내담자들도 탈모인 상담자에게는    같아." 언니는 답했다. " 그걸 걱정해. 가발 쓰고 하면 ."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나는 탈모가 심해지면 가발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다. 그저 언니는 가발을 쓰기까지  마음 부침을 알아주겠구나, 가발  나도 평소처럼 대해주겠구나 싶어서 고맙고 울컥했다. 어디에도 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소중한 대상에게 털어놓는 일이 가져오는 효과가 놀랍지 않은가? 상담자로서도, 일상인으로서도 나는 '비밀을 털어놓을  벌어지는 기적' 자주 놀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탈모, 잃은 것과 남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