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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Feb 18. 2022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완주, 그 마지막 이야기

35. 그리고 그 후 4년, 느낀점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순간, 당신의 진정한 까미노가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다. 순례길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이 순간부터 더 이상 나에게 노란 화살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 가지는 명확했다. 걱정이 있어도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내 주변으로부터 감사함을 느끼고,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


 '18.04.21 ~ 05.21까지 31일간의 순례길 여행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2014년에 우연히 유럽 여행 중에 이 길을 알게 되어, 그로부터 4년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마침내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룬 기분입니다. 한 사람이 800km를 10여 kg짜리 배낭 하나만 메고 걷는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항상 관광지를 둘러보고, 사진 찍고 또 이동하는 점찍는 방식의 여행만을 해왔던 나에게, 이번 순례길의 선 여행은 그 무엇보다 뜻깊었습니다. 그리고 800km를 완주하는 순간, 학생 때도 그렇듯 무엇이든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생에 가장 자존감이 높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사회 초년생의 생활을 정신없이 하고 있을 19년 4월 무렵, 친한 학교 후배가 부탁하여 모교에서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아는 후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 순례길과 삶을 비교하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기억에 납니다.


 살다 보면 이 과제만 끝나고 나면 다 끝난 거 같고, 취업만 하면 다 끝난 거 같고, 이것만 하면 다 끝날 것 같았지만 전혀 끝나지 않고, 뭘 해야 할지, 뭐가 맞는 것인지, 어떤 선택이 정답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저도 지금 여러분들과 똑같습니다. 그럴 때는 일단 선택을 하고 한 번 해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년 4월에 제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는데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인데 800km 정도 되는 길을 한 달 동안 걸었어요. 800km, 상상이 되시나요? 처음부터 800이란 숫자와 목적지만 생각하면 "대체 이 길을 언제 걷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하지만 그냥 일단 걸어보는 거예요. ‘할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하루하루 묵묵히 20km, 30km씩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에 800km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삶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살면서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은 20대가 조금만 지나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의 정답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생 때 한 분야를 팠지만 이게 정답이라 생각하고 판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냥 하나하나 했고 조금씩 걸어갔을 뿐입니다. 혹시나 아직도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데 하질 못하고 계신 분이 있으면, 그냥 일단 한 번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목적지에 가까워져 있을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결국, 상황을 바꿔 나가는 것은 순간순간 나의 마음가짐, 인간의 본성인 게으름과 같은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의지, 올바른 선택지를 판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만 있음 세상을 살아가는데 충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례길은 저에게 작은 성공 경험을 주었습니다. 제 삶 중 어떤 순간 보다도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노란 화살표'라는 확실한 목표, 그 목표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표지들, 그리고 항상 같이 있어주는 사소하면서 소중한 존재들 덕분에 길을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도 늘 그렇게 살아가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나, 2022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선택과 두려움에 용기를 얻고 싶어 그때 그 길을 걸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저는 떠나기 전과 여전히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한 걸음 나아졌다고 생각한 바로 다음 순간,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절망의 늪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당연하겠지만 마음가짐의 변화는 순례길을 걸었다고 해서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 모양인 것 같습니다.


  꿈과 이상이 가득한 제가 사회의 현실을 깨닫는데는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세상의 꽤 많은 것들은 이미 다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때 그 시절, 뭐든 원한다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망감을 느낄 때마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경험한 좋은 기억들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곳에서 제가 제 자신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했는지 떠올리곤 합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힘내라고 "Buen Camino~!"를 외치는 순례자 및 주변 거주민들, 운전 중에 힘내라고 손을 흔들어 주시는 시민들, 개와 같이 걷는 순례자들, 가족이랑 같이 걷는 사람들, 나보다 어린 친구들, 같이 걷는 노부부들, 애기를 유모차에 태운채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는 외국인 부부들, 시각 장애인인 어머니를 모시고 순례길을 걷는 딸, 그리고 평범하지만 무언가 다른 순례길의 시골 풍경들 이 모든 순간이 저에겐 감동이자 감사한 순간 이었습니다. 정말 비범한 능력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제 생에 두 번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순간, 당신의 진정한 까미노가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례길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이 순간부터 더 이상 나에게 노란 화살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세상에 자신만이 갈 수 있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완벽해 보이는 삶을 흉내 내려 하지 않고,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노란 화살표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요즘,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 제도 때문에, 끊임없이 경쟁을 유발하는 기업 문화 때문에, 주변 사람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갑니다. 저 역시도 세상에 이미 정해져 있는 틀에 실망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비판적인 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쳇바퀴 굴러가듯 흘러가는 삶을 잘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최소한 단 한 번의 행복이라도 느꼈기 때문에,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 하나는 알고 있기에.


 길을 걷기 위해 건강한 두 다리와 건강한 몸이 있으면, 그건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힘든 일이 있을 때 들어주고, 옆에서 들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건 감사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길을 걸으면서 항상 다치지 말라고, 무사히 도착하라고 뒤에서 묵묵히 기도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건 축복받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힘든 일은 있어도 행복하다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기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주변에 존재하는 사소하고도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과 감사함을 느끼면서 이 쉽지 않은 세상을 잘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버텨 나가며 겨우 살아가고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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