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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작 Sep 26. 2023

믹스트존(mixed zone)의 추억

선수와의 거리, 50cm?

스포츠 현장은 예상보다 숨가쁘게 움직인다. 취재진과 방송단은 경기가 펼쳐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코앞에 볼 수 있다는 특권도 있지만 그 특권을 주는 이유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좀더 가까이에서 담으라는 의미도 있기때문에 이들의 시선은 경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경기 중에 지도하는 코치들의 시선도 보고 관중들의 반응도 살피며 경기가 끝나는 시간을 체크해야한다. 왜냐하면 선수들이 경기 후 지나가는 믹스트존의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위해서.  경기가 끝나기 전에 취재진과 방송단은 믹스트존에 모인다.  요즘 진행 중인 아시안게임 중계화면에도 경기 후나 시상식 후에 선수들이 줄줄이 취재진 앞에 서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바로 그곳이 각나라 취재진들이 모여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이는 믹스트존이다.


어차피 같이 취재를 하는 공동취재구역이기때문에 여기서 특별한 이야기를 듣긴 어렵다. 하지만 선수들을 코앞에 두고 경기 후일담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녹음을 해가며 취재수첩에 적어가며 그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그래서 그걸 조금이라도 방해한다 싶으면 험한 말이 나오는 곳이 믹스트존이기도 하다.  특히 주로 라디오방송단으로 종합스포츠대회를 가는 나로서는 믹스트존에 대한 기억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시원하게 말이라도 통한다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라면 언어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라디오는 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는 분위기다. TV방송들은 라디오를 같은 매체로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밀려나 글을 쓰는 기자들이 모여있는 프레스자리로 가면  또 거기에서도 라디오의 자리는 없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인터뷰를 실패하는 일은 없지만 그 과정 속에서 때론 현장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힘들 때가 무척이나 많았다. 현장 취재가 주는 압박감에 취재경쟁과 자리경쟁, 거기에 매체의 정체성에 대한 걱정까지 해야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믹스트존은 여러나라 취재진과 방송단을 만나는 즐거움이 더 큰 곳이다. 세계적인 스타들도 경기 후엔 꼭 거쳐가야하는 곳이 믹스트존이기에 그곳은 선수들과 기자, 리포터가 서로 인사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이에는 안부를 전하고 또 친해지기도 하는  취재진과 방송단의 정모 같은 곳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 라디오 매체들도 당연히 그곳에 오기때문에 그들은 어떤 장비들을 쓰고 어떻게 방송하는지, 꼭 라디오가 아니더라고 방송장비와 컨텐츠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그 장소이기도 하다.

1인 방송을 하는 리포터를 처음 본 것도 그 곳이었고, 라디오 취재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낀 것도 그 장소였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그곳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2002 부산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여러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수많은 종합대회를 다녔을 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취재진 자격으로 경기를 보거나 현장 방송을 할 때면 가장 설레는 시간이 경기가 끝나기 직전 믹스트존으로 뛰어갈 때다.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를 생각하며 달려가면 메달 색깔에 달라지는 선수들의 희비와 몰아치는 감정들, 경기를 막 끝내고 나온 선수들의 숨소리와 온몸에 흐르는 땀방울들이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하곤 한다. 그래서 아시안게임 중계를 보면서 나는 경기 후 화면 구석에나 보이는 믹스트존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직업병일 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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