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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ara Dec 29. 2022

불편함을 사랑하는 우리들

'감성'의 오랜 집

마치 정의로움이나 행복처럼, 편리함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가 되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 편리한 삶'이라는 구호 아래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왔으며, 그것이 집약된 결과 우리는 어느 때보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글씨 쓰는 일을 보더라도 그렇다. 인간은 글씨 쓰는 일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깃펜을 거쳐 만년필과 볼펜, 나아가 타자기와 키보드를 발명했다. 그러다 손으로 글을 쓰는 일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기에 이르러, 음성을 자동으로 텍스트로 변환하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이제 우리는 손가락짓 몇 번으로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집 앞으로 대령받을 수 있고,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일들을 앉은자리에서 처리할 수 있다. 결과를 위한 과정의 비중은 극단적으로 축소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지금의 편리함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세상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불편함은 모습을 감추질 않는다. 편리함이 불편함을 종식시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불편함이 자발적으로 남아서 존재하는 모양새다. 오히려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불편함은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채 이미 불편함의 매력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히 불편함을 즐기는 골수 마니아들 이외에도,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도.


편리함이 과정의 축소라면, 불편함은 과정 그 자체이다. 과정이 생략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편리함 너머로 공허함을 느낀다. 쉽게 얻어지는 결과들은 효율적일 순 있으나 늘 그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한 것이다. 사람들이 성공 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가 '성공'보다는 '스토리'에 있듯이 말이다.

그처럼 편리함이 남긴 공백을 느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불편해지는 길을 택한다. 캡슐 커피머신을 쓰는 대신 원두를 직접 손으로 갈거나, 잘 정돈된 음원을 스트리밍해 듣는 대신 거추장스러운 LP판을 사러 간다. 키보드로 손쉽게 글자를 타이핑하는 대신 만년필에 손수 잉크를 주입해 글자가 번지지 않도록 한 글자 한 글자 시간을 들여 써 내려간다. 가볍고 얇은 전자책 대신에 두껍고 무거운 종이책을 고집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스스로 품을 들이게 만드는 불편함의 미학은 바로 변수에 있다. 오직 결과만을 내어 주는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택했을 때, 그들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과정을 누릴 기회가 생긴다. 이 그라인더 대신 저 그라인더를 쓸 수도 있고, 저 잉크 대신 다른 잉크를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 요소 하나하나를 통해 얻는 결과물은 매번 새롭다. 과정이 길어지면 그만큼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원두가 평소보다 덜 로스팅됐을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습도 때문에 잉크가 더 번질 수도 있다. 그처럼 균일하지 않은 결과물들은 실망 대신 풍요로운 경험을 안겨 준다. 이때 불편함은 편리함이 남긴 공백을 메꾸는 방식이자, 그 자체로 삶의 내용물이 된다. 당신을 한 순간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불편함을, 우리는 라이프스타일이라 부른다.

저마다 사랑하는 불편함을 하나씩 지닌 덕에 우리의 삶은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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