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한살이를 돌아보는 입동 절기
봄과 여름에도 열매가 달리지만, 가을에 가장 다양한 종류의 열매가 맺히지. 그럼 열매를 맺는 것으로 끝일까? 맺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맺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멀리 떠나보내는 거야. 자연에 깃들인 생명들의 생물학적 존재 이유는 번식이야. 번식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지.
생물이 번식에 성공하기 위하여 짜내는 전략은 정말 놀라워. 그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어떻게든 씨앗을 멀리 퍼뜨리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진단다.
식물이 씨앗을 맺어 자신의 발밑에 떨어뜨리면 그 씨앗은 싹트지 않아. 싹이 트는 데 필요한 물, 햇빛, 영양분 등을 어미 식물에 빼앗기기 때문이지. 어미 식물 또한 이러한 이치를 잘 알기에 씨나 열매를 멀리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어. 식물이 어떻게 씨앗을 퍼뜨리는지 궁금하지?(59~60쪽 중에서)
안녕? 나는 메리골드의 씨앗이야. 나는 메리골드와 함께 살다가 꿀벌이 나를 등에 놓고 어디론가 갔어. 계속계속 가다가 나는 어딘가에 떨어졌어. 바닥은 딱딱한 회색이고 사람과 차가 북적거렸어. 나는 너무 당황하고 무서웠어. 그때 다행스럽게도 어디선가 바람이 아주 힘차게 불었어. 나는 아주 멀리 날아갔어. 가다 보니 드넓은 들판이 있었어. 나는 그곳에 있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어. 그런데 바람이 나의 신호를 알아들었나 본지 점점 약하게 불다가 결국 잠잠해졌어. 그 후 따뜻한 해가 쬐었어. 나는 깜빡 잠이 들었어. 잠을 자고 있는데 하늘에서 물이 떨어졌어. 나는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며칠 뒤 비가 그쳤어. 그런데 내 몸이 뭔가 바뀐 것 같았어. 나의 몸 끝에 꼬리 같은 짧은 실이 나오고, 머리 쪽에는 우리 엄마 같은 초록 잎사귀가 살짝 보이는 것 같았어. 흙 사이로 따스한 빛이 느껴져 당장이라도 나오고 싶어서 있는 힘껏 몸부림을 쳤어. 드디어 밖에 나온 것 같았어. 밖 공기를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더 상쾌했지. 나는 몇 주일 동안 빗물을 마시고, 햇볕을 받으면서 쑥쑥 자랐어. 이제 나도 엄마 같은 어른이야. 나에게 꽃봉오리가 맺히고 어떤 곳은 꽃까지 폈어. 그 후로도 몇 주가 지나고 왠지 모르겠는데 힘이 푹 빠지는 것 같았어. 꽃이 지고 내 꽃이 씨앗으로 변했어. 이제는 내가 새 생명을 만들었다는 게 너무 기뻤어. 며칠 안 지나 내 씨앗들도 나를 떠나고 꽃을 피우러 갔어. 이제는 바람에도 쓰러질 정도로 약해졌어. 너무 힘들어. 그래도 건강하게 더 오래 살 거야. 그럼 안녕. / 주연
안녕? 나는 배추의 씨앗이야. 아마도 넌 내가 지금은 안 보일 거야. 내가 커 가는 과정 중 제일 싫었던 과정은 바로 내가 중근쯤 조금씩 커가는 과정이야. 그때 벌레들도 조금씩 날 야금야금 갉아먹었지. 내가 조금 큰 걸 보고 바로 달려들더라. 먹잇감을 노리다 갑자기 뛰어든 것처럼 말이지. 나도 그냥 날아가고 싶기도 하더라고. 좀 부러웠는데 근데 다행히 옆에 배추들도 있어서 어떨 땐 옆의 배추, 어떨 땐 나 이렇게 갉아먹어서 그래도 한결 나았어. 어떨 때는 운인지 내 배추 잎에 벌레가 아무도 없을 때도 있었어. 그런데 하루가 지나니 바로 내 거에만 딱 붙어서 갉아먹더라. 벌레들이 '작전을 짰나?'라고 생각을 해봤기도 했어. 제일 좋았던 과정은 배추가 아닌 그냥 싹이 조금 났을 때야. 그때는 벌레들이 하나도 안 와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나 봐. 그래서 그런 것 같아. 이제 편지를 마칠게. 그럼 안녕. / 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