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Nov 17. 2024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8월부터 서울의 남고에서 독서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을 하면서 어느 날은 어른처럼 의젓한 학생들의 모습에 감탄하고, 어느 날은 그래도 애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학생들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안쓰러움이었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부에 지쳐 보이는 학생들은 시험과 수행에, 모의고사까지 거의 매일이 시험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독서만큼은 즐겁고 편한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하고, 학생들의 상황에 맞게 수업방향을 조정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딴짓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화내기보다는 타이르거나 사정을 들어주려고 애쓰면서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편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수업을 하고 있다.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라고 한 학생이 물었다. 항상 질문은 과제 언제까지 내는지, 아니면 이 수업이 내신에 들어가는지처럼 학습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학생들 입장에서 이렇게 사소한 질문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은 몇 살인지, 첫사랑이야기 해주라던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려는 아이들이 많았다. 요즘은 선생님한테 관심도 없을뿐더러 그런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는 것 자체를 학생들은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았다. 매시간 성실히 수업해야 내신도 잘 받고 시험도 잘 보니까 선생님한테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는지 질문을 한 것이다. 


학생의 질문을 듣고 그제야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이 없다. 그저 듣기 좋은 음악은 장르에 상관없이 듣는 편이다. 어느 날은 클래식, 어느 날은 아주 오래된 가요를 듣는다. 어느 날은 영화음악을 하루종일 듣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음악 취향이란 매일 먹는 저녁의 메뉴 같은 것이다. 오늘은 김치찌개, 내일은 된장찌개. 그래도 질문을 받았으니 뭐라도 답해야 할 것 같아서 유독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생각해 봤다. 아주 좋아해서 그 음악이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문득 생각날 때면 유튜브에서 찾아서 반복해서 듣는 음악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본조비의 'always'가 떠올랐다. 나는 이 음악을 스무 살 때부터 즐겨 들었다. 우연히 듣고는 당시 삐삐 배경음악으로 쓰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전주 부분이었다. 드럼소리가 시작되는 부분을 듣고 또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내 친구들은 나에게 삐삐를 칠 때면 너 사회에 불만 있냐고 묻곤 했다. 


당연히 그 학생이 이 음악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말했는데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다른 음악, 빌리조엘의 '피아노맨'도 알고 있었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음악이었다. 피아노맨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카페에서 처음 들었던 음악이었다. 그 카페에는 CD가 딱 한 장 있었다. 하루종일 라디오를 틀어놓는 낡고 조금은 지저분하기도 했던 카페였다. 카페에 손님이 두 테이블이 동시에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되는 카페였다. 그 카페에서 유일하게 있던 CD로 나는 피아노맨을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으면서도 도무지 지겹지 않았다. 그러니 피아노맨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 것이다. 우리는 잠시 피아노맨과 빌리조엘과 본조비, 그리고 호주의 락밴드 '5 세컨즈 오브 서머'에 대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그 아이는 나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지? 한 권만 고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레미제라블, 토지,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빨간 머리 앤...... 그 아이는 레미제라블을 완독 했고, 동일 작가의 웃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음악과 책을 이야기할 때 그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나도 그랬다. 시험과 성적과 상관없이 책과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이 수업에서 원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이는 성적이 극상위권은 아니지만 의젓하고 성실해서 선생님들이 다 좋아하는 학생이라고 옆친구가 말했다. 그 아이는 자기는 성공도 좋은 대학도 필요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고, 그렇게 살거기 때문에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했다. 지방의 경쟁률이 낮은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 거라 괜찮다고. 젊은 시절의 배철수 님의 헤어스타일을 한 그 아이의 행복이 쉽게 깨질 것 같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잠시나마 레미제라블과 웃는 남자를 이야기했던 시간도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유튜브에서 본조비를 검색했다. 드럼소리가 심장을 울렸다. 마치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 것처럼 드럼소리가 주는 설렘을 즐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견과 오해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