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의 시작, 엄마
나의 엄마는 멋있으신 분이셨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아셨고 그것들을 즐기셨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고 계셨다.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고 계셨다.
할머니도 계셨지만 집안일을 도와주던 언니가 있는 탓에 집안일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엄마는 인기가 많아 친구도 많았고, 3명만 모이면 계모임을 만든다는 한민족답게 계모임도 다양했다.
낮에 모임을 가신 엄마는 내 하교시간에도 외출 중이었던 때가 많았다. 하교 후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를 불렀을 때 엄마의 대답대신 안 계신다는 언니말이 먼저 들릴 때는 풀이 죽었다. 늦은 시간까지 모임이 끝나지 않았던 날 아버지는 걱정을 화로 표현했고 엄마가 귀가하시면서 화도 가라앉는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아버지의 화를 견뎌내면서 나는 나중에 절대 밤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했다.
직장에 다닐 때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가서 저녁을 준비했고 저녁엔 회식 외엔 절대 약속을 잡지 않았으며 낮모임은 최소한으로 했다.
모처럼 집에 있는 날은 베이킹을 했다. 버터와 바닐라향을 넣은 쿠키와 케이크를 구우며 아이들이 먼 훗날 케이크를 먹으며 엄마를 기억하기를 바랐다.
흉보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젊은 날엔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나이 든 엄마 곁에 친구들이 항상 계셔서 아빠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신 후에도 덜 외로운 걸 보면서 난 안도했고 엄마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난 결국 엄마를 통해 내가 되었고 성장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엄마는 어떻게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을까? 엄마의 사랑법은 맞춤형 사랑법이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알고 다르게 적용하셨고, 우리 모두를 존중하는 사랑법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에게서 사랑받았고, 이제 그 사랑을 베풀려한다. 각자에게 다른 사랑공식으로.
이젠 엄마도 떠나셨다. 젊은 날처럼 여전히 바쁘게 사셨던 엄마는 떠나시기 전까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친구를 돌보셨고, 안부를 묻고 물어주는 따뜻한 친구들이 곁에 있었던 엄마는 진정 행복한 분이셨고, 이젠 내가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