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북 Jul 04. 2024

인간실격

금주의 서평

참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걸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위 문장에 공감하기도 할 것이고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공감된다. 살면서 꽤 많은 부끄러운 행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귀찮아서 거짓말하여 미룬 적도 있고 어둠의 경로로 영화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질문에는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지켜보다보면 대충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그리고 나는 그 기쁨에 의미를 이해한다. 얼마나 그것들이 인간의 삶을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인지 그래서 나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다. (물론 싫은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는 것은 싫음)나는 이 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요조라는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죄의식 속에 사로잡혀 인간 실격이 된 자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적인 삶의 고민 가식과 위선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가면을 쓴 유년 시절

주인공 요조의 유년 시절을 철저히 가면을 쓴 시절이었다. 남들과 인식하는 것이 다르다는 두려움은 미칠듯한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대표적으로 하루에 3끼 식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남들과 다름을 결국 자기 자신 감추게 되는 결과로 작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광대 나 개인적으로는 가면이라고 생각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점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가면은 2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 남들이 나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 두 번째 내가 남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 첫 번째는 쉽다 가면을 쓰면 가면 뒤에 나의 모습을 사람들은 알 수 없고 가면의 모습이 진짜 인 줄 알고 사람들은 착각한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남들과 다른 인식을 숨기고 공동체라는 삶 속에 스며들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면을 쓰면 결국 연기를 해야 한다. 가면의 모습은 진실이 아니고 꾸며낸 모습이다. 그러한 것을 꾸며내기 위해서는 남들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쓸 수 없다. 자신의 가면 뒤에 모습이 들통나지 않게 꼭꼭 숨겨야 한다. 결국 가면을 쓰면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바라보지 못했기에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볼만 하다. 하지만 주인공 요조만 가면을 쓰면서 살아간 것은 아니다 앞에서는 아버지의 강연을 칭찬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것이 인간 세상의 이치였다. 하지만 이 소설의 중점은 그런 것을 비난하는 게 아닌 어떻게 그런 가면을 쓰고도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느냐였다. 그리고 이런 것을 찾지 못한 요조는 남들에게 호소 하지 못하는 계기로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벗겨지는 가면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웃기는 역할이된 요조는 고향을 떠나 도호쿠 지방의 한 중학교에서 타향살이하게 된다.요조는 타케이치라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동안 가면을 쓰고 자기 모습을 숨겨왔던 것이 들통났다. -일부로 그랬지-라는 한마디에 요조는 충격으로 부르르 떨었고 자기 광대 짓이 들킬까 봐 요조는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후 괴물 그림의 선물과 넌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친구의 말은 요조를 화가의 꿈으로 인도한다. 타케이치를 만난 요조는 이후 자기 모습을 세상에 천천히 보여주게 된다. 벗겨진 가면의 모습 말이다. 호리기 마사오를 만 만나면서 여자를 알게 되고 술과 도쿄에 대한 지리적 정보, 공산당 조직 같은 것도 가입해 그들과 동질감을 느낀다. 이후 쓰네코라는 여자를 만나고 카마쿠라 바다에서 동반 자사를 하게 되고 쓰네코는 죽고 요조는 살았다. 요조의 가면은 타케이치에 의해서 벗겨졌고 호리기 마사오를 만 만나면서 그 모습이 천천히 들어났다고 생각된다. 여자를 알게 되고 술을 먹으면서 유흥과 성에 도취해 가며 살아가는 삶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면을 벗어내며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고 했고 천천히 자신의 가면을 벗어더졌으나 그가 마주한것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쾌락주의자 및 도피주의자로 변했을 뿐이다.


가면의 정체는 인간 실격

넙치가 요조를 찾아와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요조는 화가를 꿈꾼다고 이야기한다. 넙치의 반응 갸우뚱 내지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본 요조는 호리키가 있는 곳으로 성급히 가출하게 된다. 호리키가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할 때 당시 거기서 시스코를 만나고 만화 일을 하면서 나름의 만화가 되고 시즈코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하지만 시즈코와 딸의 모습을 보고 민폐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파트를 나오게 된다. 카페에 다시 들어가게 된 요조는 거기서 술을 끊으라는 요시코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그 이후 요조는 꽤 술을 끊고 작업에 매진한다하지만 호리키와 술판을 벌이며 비극 게임 반대말 맞히기 게임을 하던 도중 요시코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보게 되고 때 묻지 않은 신뢰감을 믿었던 것이 산산조각나게 된다. 이후 요조는 다이엘 한 갑을 먹고 병원으로 가게 되고 여자가 없는 곳으로 없다는 말에 넙치와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형님이 요조를 찾게 되고 먹고사는 것을 보장할 테니 고향으로 내려가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이야기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결국 요조는 보편성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에 녹아들지 못하고 인간실격자가 되었다. 이 소설의 핵심은 정신병원에 가서 인간실격을 외치는 요조의 모습이다. 요조는 요시코를 통해서 그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소감 및 평가

솔직히 학교에서 집중 안 하면서 읽어서 자세하게 글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인간성을 무엇으로 정의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인간다운 삶은 무엇이고 인간 실격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성 또는 인간다운 삶은 보편성인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인간성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되는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게임에 빠져 사는 것이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되는가? 혼자 게임에 빠져 사는 것이 결혼 사람의 인생보다 나쁜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인간적인 삶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왜냐고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보편성에 벗어났을 때 우리 사회가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태도는 다음과 같다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그래서 사실 생각해 보면 실격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스피드 스케이팅이라든지, 달리기 시합에서 휘슬을 불기 전에 먼저 출발할 때 우리는 그들을 향해 실격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실격의 의미는 정해진 기준에 미달한다든지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그 사람의 지위를 박탈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지위는 박탈되지는 않는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다음 날 내가 인간이라는 포유류 종에 위치에서 도마뱀의 파충류 종 위치로 변하지는 않는다. 즉 인간은 한번 태어난 이상 영원히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즉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지위는 박탈될 수 없고 따라서 인간 실격이라는 용어는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는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본 것이고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즉 인간의 위치에 대해서 정의할 때는 생물학적인 종의 위치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평가와 시선을 가지는 사회적인 위치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 질문은 이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 다른 사람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대다수의 인간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삶을 이해하지 않고 따라가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즉 사회적인 기준에 벗어나는 경우 또는 사회적인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그 사람들은 사실상 사회적으로는 인간이 아니게 평가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 취급을 안 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이 그 기준을 벗어난 경우들이 대다수다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우리가 사회적으로 인간 취급을 하는가? 또는 학교에서 말을 버벅대거나 친구랑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인간으로 바라보는가? 사회적인 시선과 평가로만 보자면 그들은 인간의 자격이 상실된, 이른바 인간 실격자들이다. 그리고 나는 요조의 삶도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사고방식이 다르고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결국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가지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데 이러한 고민과 걱정을 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면 요조는 자신의 죄의식과 불안 속에서 지속적으로 고립당하는 점 그런 점에서 바라보자면 인간의 행동을 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인간 실격 조건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요조는 자신이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병원에서 인식하면서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결국 요조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고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회적인 기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든 최종적인 생각은 그렇게 사회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바라보기엔 그들을 단순히 인간 실격이라고 배척하고 무시하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사회적 기준을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요조의 어린 시절에 조금이라도 요조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어른이나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요조는 인간 실격이 되었을까? 나는 사회적인 기준에 벗어난 사람들을 사회가 천천히 설득하기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런다면 요조와 같은 사람들도 조금씩 인간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의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