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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쓰는미리 Jan 28. 2021

5.아니 나 쌍둥이 아빤데?

삼둥이 아빠의 희대의 망언


아기집 셋..

선택유산..

자연도태 가능성..


행복을 누려야할 임신초기 매일을 눈물로 보냈다. 한날은 입덧이 조금 괜찮아져 퇴근하는 신랑을 마중나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신랑을 보며 말했다.


"삼둥이 아빠!!!"
"아니, 나 쌍둥이 아빤데?"


난 그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뱃속 아가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리 만무하지만 아랫배를 붙잡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마음으로 되뇌였다. 남편은 뱃속 아가들 보다 아내인 내 걱정 때문에 선택유산을 더 지지했다. 사실 엄마인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그렇게 할 것을 원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들을 지켜야할 사람은 나인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치 우리넷 모두를 거부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외로웠다. 그렇게 매일을 울고 또 울었다.


가족들이 선택유산 쪽을 택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선천성심장병 중에서도 중증에 해당하는 할로씨4징(TOF)의 병력이 있는 나는 두돌 때 그리고 24살 때 심장수술을 받았다. 중증 심장병 환아였지만 수술이 잘 되어 누구보다 더 건강하게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하지만 임신 자체가 힘들기도 하고 무려 아이셋을 한번에 품는다는 건 심장에 큰 부담을 주는 일이기에 객관적으로 판단하자면 아이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옳은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삼둥이는 신이 내려준 것이며, 셋을 한번에 품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내려주는 축복이라고 했다. 마침 그때, 배우 송일국씨의 아이들인 대한민국만세가 한참 방송에 나오고 있었고 나는 세쌍둥이 엄마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초대되어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삼둥이들이 세상에 태어났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도 건강하게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을 거란 믿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일단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보았다. 당시 나는 29살의 성인 여성이였지만 선천성심장병의 특성상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를 봐야했다. 20대 초반 부터 진료를 보았던 교수님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고 검사 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TOF라는 병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지금 완전교정이 되었고 새로 넣은 판막도 제대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몸 상태도 너무 좋고 젊기 때문에 충분히 셋을 품을 수 있지않을까 해요. 일단 내 소견은 그런데 이런 쪽으로 굉장히 전문적으로 잘 보시는 산부인과 교수님이 계세요. 소견서 써드릴테니까 꼭 그분에게 진료 받으세요. 임신 축하해요. 정말 대단하다. 살면서 세쌍둥이 임신한 사람 처음 봤어요."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을 만나 나의 의지에 더 큰 지지를 받았고 나는 이아이들을 지켜내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결국 온 가족이 셋을 품는 것을 지지해주었다. 워낙에 가족 모두가 믿는 교수님의 소견도 한몫했고 임신을 했는데도 매일을 울고 불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가족들도 두손두발 다 들었다.




일주일이라는 폭풍의 시간을 겪은 뒤, 또 다시 산부인과 진료를 보러갔다.

진료실에 들어가 초음파를 확인했고 자연도태 되는 아기집 없이 세개의 아기집 모두 건강하게 자리를 잡았다고했다. 그런데도 의사는 또 다시 선택유산을 강권했다.


"이미리님 지금은 셋 다 잘 품고 낳을 수 있을 것 같죠? 아니요? 셋 다 품다가 셋 다 아니 엄마 까지 잘못 돼요."

"심장병 때문에 안 된다고 하셨죠? 제가 확인 받고 왔어요. 저 건강하대요. 셋 다 지키고 싶어요."

"누가요? 누가 그래요?"

"제 심장 계속 봐주시던 의사선생님한테 검사 받고 왔어요. 제 심장 상태가 거의 일반인과 비슷한 상태라서 낳을 수 있대요. 저 셋 다 낳고 싶어요."

"지금은 잘 품을 수 있을 것 같죠? 아니요. 임신 기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들어져요. 그러다 다 잃는 수가 있어요. 수술합시다. 날짜는 다음주로 하고 밖에서 간호사에게 설명 듣고 수술동의서에 사인해서 보호자와 함께 오세요."


의사가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내가 당하고 있는 이상황이 무엇인지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이미 눈물이 터져서 더이상 말을 끝맺지 못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따라나온 간호사가 내손을 잡아주며 지금 너무 속상하신 거 이해한다며 날 위로했다. 워낙에 경험이 많으신 분이라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시고 대처를 하시는 거인데 너무 강하게 말씀하셔서 마음 다치셨을 거 같다며 사과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간호사는 한참동안 날 달래주다가 손에 수술동의서를 쥐어주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의 말은 내게 유리가 되어 꽂혔지만 그가 한 이야기도 나와 아이들을 위한 말이었으리라 생각하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그병원을 찾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다음 예약과 임의로 잡아준 수술날짜도 취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날 간호사를 통해 의사가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지만 난 정중히 거절했다.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아픈 몸으로 태어나 두번을 다시 태어난 나인데 또 다시 극복해보라고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 생각했다. 막말로 내가 심장 수술을 두번이나 한 사람인데 그거 못 버티겠냐며 호기롭게 결정했다.



뱃 속 아이들 셋,

이 아이들을 내가 꼭 지켜내리라.

그리고 나도 꼭 지켜내리라.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세쌍둥이 임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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