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나는 보호종료 아동이다
나는 보육원에서 살다가 만 18세가 돼서 자립을 하기 시작한 '보호종료아동'이다. 500만 원으로 월세방을 얻으려니 월세가 너무 비쌌다. 그래서 보육원에서 믿고 다르던 선배 준환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는 매우 반가워하며 안그래도 퇴소날짜가 다가오는 것 같아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준환선배는 성북구의 허름한 빌라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는 이 정도의 집에 사는 선배가 부러울 정도로 집을 구하기 힘들었다. 선배의 집은 월세가 30만 원밖에 되지 않지만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 역까지의 거리도 꽤 가까운 편이었다. 선배는 내게 같이 살자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나는 보육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희철이가 퇴소하는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이었다. 희철이가 나오면 함께 월세방을 구해서 지내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나는 선배에게 희철이가 나올 때까지만 같이 지내게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선배는 좁아도 상관없으면 희철이가 나오면 셋이 함께 살자고 제안하면서 보증금과 월세를 나눠서 내고 나머지 생활비는 공동명의 통장을 만들어서 사용하자고 했다. 나는 그런 준환 선배가 친형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동안 어떤 피붙이 하나없이 보육원에서 자라긴 했어도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형과 동생, 친구들이 있기에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나는 보육원에서 가지고 나온 옷가지와 선물로 받은 살림살이 몇 가지를 챙겨서 선배 집으로 갔다.
캐리어하나와 큰 가방 하나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선배는 친절하게도 내게 안방을 내어 주며 마음껏 쓰라고 했다. 자신은 게임을 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에서 먹고 자고 하겠다면서 짐을 정리하는 걸 도왔다. 그리고 참치통조림을 따서 고추장찌개를 끓여줬다. 계란 프라이 한 장을 밥에 얹고 찌개 한입을 들이키니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보육원에서 있을 때보다 더 따스한 가정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행복하게 독립의 첫 날을 보냈다.
막 초겨울로 접어드는 지하실 방도 포근하레 느껴졌다. 하지만 이 행복은 희철이 퇴소하고, 셋이 지내게 되자 곧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희철이는 준환 선배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까, 걱정이 많았다. 자신이 소문에 들은 바로는 준환 선배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희철의 자초지종을 듣고 그런 말을 하는 얘들이 더 나쁜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 말을 전한 아이들은 종종 불량스러운 행동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소소한 물건들을 훔치거나 같은 보육원 출신 애들에게 용돈 같은 것을 빌리고 갚지 않는 행동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었다.
선배가 걔네들 한테 조언을 하다가 역으로 뒤집어쓴 거라고 해명했다. 선배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다. 그러자 희철은 내 말을 믿어줬고, 순순히 선배의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선배는 희철이 들어오자 나와 희철에게 각각 200만 원의 보증금과 월세를 나눈 금액을 먼저 달라고 했다. 희철은 집안에 들어와서 짐을 풀지도 않은 상태로 준환에게 계좌이체를 했다.
선배는 돈을 확인하고는 쿠*에게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니 자신을 기다리지 말라고 하면서 집을 나섰다. 그동안 나와 희철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을 사 먹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계획하느라 밤을 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