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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이 Jan 28. 2024

글을 쓰면서 얻는 마음의 평화



나에게 있어, 중학교 이전의 글쓰기는 체벌을 받지 않기 위해 작성한 몇 줄 과제 들 뿐이었다. 

주로 일기나 독후감이다. 일기는 매일이 ‘재밌었다’, 독후감은 줄거리를 베껴 쓴 후에 ‘감동받았다’, 로 마무리 했다. 그마저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백일장에서 금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명작동화였던 ‘키다리 아저씨’를 읽고 독후감을 쓴 것인데 좋아했던 책이었고 진심으로 감동받았었다. 처음으로 감동받은 마음 그대로 구구절절 적어내고, 진심으로 쓴 글의 힘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내가 느낀 그대로 글을 쓰자 사람들이 알아준 것이다. 정말이지 기분이 좋았다. 그날 이후부터 글은 부쩍 친숙하게 다가왔고, 내가 글을 꽤 잘 쓰는 사람으로 여겨져서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밤하늘, 별, 낙엽, 노을이 빠지지 않는 겉멋 가득한 글이었지만 계속해서 써나갔다. 단짝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하고 되받지 못한 서운함을 적고, 부모님 다툼에 흘린 눈물의 서사들을 기록했다. 미래에 대한 좌절을 곱씹어 냈다.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한권의 일기 속에 녹여 내면서 버텨내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에,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대학입학을 포기 한 것 때문에  다소 의기소침했지만 돈을 벌기 시작하니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틈만 나면 직장동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들은 내게 적지 않은 즐거움을 주었고 고무되게 했다. 나는 말 그대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는 중이었던 거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 속에서 한없이 행복해야 했지만 점점 위축되는 걸 느꼈고, 말을 붙이기가 힘들어졌다. 굴욕적이고, 침울하고, 불쾌한 감정을 만드는 실체가 분명히 존재 했지만 정확한 줄기를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나는 어느 새 펜을 들고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적은 말이 ‘나는 왜 이럴 까?’였다. 신기하게도 단 여섯 글자를 메모지에 끄적거렸을 뿐인데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걸 느꼈다. 두서없이 당시의 감정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기 시작했다. 반성을 함께 덧붙여 쓰고 나서,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는 자기감정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게 됐다.

빽빽하게 적은 만큼,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울퉁불퉁한 마음들이 종이처럼 평편해지는 걸 느꼈다. 그건 온전한 평화를 얻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글을 쓰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건 다시 나로 돌아오게 했다. 비로써 주변 사람들의 진심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리자 말을 건넬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온전히 자신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내안의 문제와 고민에 선명한 윤곽을 입히게 한다. 그러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게 되는 거다. 나는 사탕하나라도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렇게 좋은 글쓰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나친 간섭이나 오지랖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깊이 차오르는 호흡을 내뱉을 수밖에 없듯이 “글을 쓰세요.” “일기를 쓰세요.” “메모라도 하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조각조각 의미 없는 단어들이라도 언젠가는 좋은 글로 이어주는 스위치가 되어줄 거다. 글을 쓰는 것은 우리 마음에 볕을 쬐는 일과 같다. 어지럽고 눅눅한 마음들이 햇볕을 받고 한 올 한 올 다시 일으켜 세워지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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