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얘기했던 인수건과 비슷한 어이없는 일이 더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회사가 운영하던 해외 사업이 있었는데 그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그 일을 담당하러 해외로 출장을 나와 있었고 맡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팀장이 얘기 좀 하자고 갑자기 연락이 왔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급하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국내 사업을 검토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서 출장 중인 저에게 일을 주겠다는 것이었지요.
이미 그 일을 하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왜 저에게 일을 시키는지 처음엔 상황을 몰라서 일단 알겠다고 한 뒤에 그 일을 담당하는 분께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된 건지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일을 하시다가 내가 있는 팀으로 오면서 본인에게 새로운 분야인 국내 사업개발을 하고 계셨는데 일을 나름 진행하시다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 것이었죠.
본인이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 부분도 있고 해서 팀장에게 본인이 아는 범위에서 상황을 알리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어봤는데 팀장이 먼가 마음이 안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나한테 전화를 하라도 했더군요.
아니 그런 경우면 팀장이 팀원에게 설명을 해주던지 아니면 다 같이 회의를 하면서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더 화가 났던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옆에 멀쩡히 앉혀놓고 이 사람이 일을 잘 못 하니 저보고 하라고 하는 팀장이었는데 도대체 팀원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저렇게 행동하나 싶었습니다.
상황을 알고 나서 아무래도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싶어 그 날 저녁식사가 약속되어 있는 식당에서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자료를 만들어서 그 담당자에게만 전달했습니다.
담당자에게는 팀장에게 나와 상의해서 본인이 해결방안을 만든 거라고 얘기하라고 해서 어찌어찌 해결하긴 했는데 아직까지 그 날의 팀장의 행동은 미스터리입니다.
또 하나의 일은 회사가 또 다른 기업을 인수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새로운 인수건도 그 팀장이 나서서 진행하던 일이었는데 저는 앞서 얘기한 해외 사업 확장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도 했고 전 인수팀에 있을 때 워낙 심하게 데이기도 해서 팀장과 얘기해서 기존에 하던 일이 바쁘니까 새로운 인수 TF에는 안 들어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렇게 인수를 위한 조직과 자문사가 다 정해진 시기에 퇴근해서 갓난아기 막 재우고 있을 밤 9시쯤 팀장이 전화를 하더니 인수 TF에 사람이 없다고 저 들어오라는 얘기를 계속하더군요.
지난번 기업 인수 때처럼 회사 직원 열댓 명이 인수 TF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사람이 없다는 팀장의 얘기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미 인수 TF에 안 들어가기로 얘기한 저에게 또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미 저는 인수 TF에 안 들어가기로 하지 않았냐고 내가 그 일을 맡으면 해외사업 업무에 공백이 생기니 인수팀에는 못 들어간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듣지도 않고 계속 본인 말만 1시간 넘게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애기는 깨버렸고 그걸 본 와이프는 짜증이 나서 내가 안 끊으면 본인이 전화 바꿔서 끊어버리겠다고 씩씩대고 있어서 일단 내일 얘기하기로 하고 전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해도 인수 TF에 대한 말이 없길래 그 일은 없던 일이 되었나 보다 하고 있었죠.
그런데 며칠 지난 뒤에 내가 그렇게 안 간다고 했던 인수 TF로 떡 하니 발령을 내버리더군요.
발령을 보고 난 뒤에 팀장한테 해외 사업 때문에 인수 TF 못 간다고 하지 않았냐 해외사업 업무공백은 어떻게 하시려고 하냐 했더니
"네가 여기서 일하고 싶어 하는 거 알고 있어서 내가 힘 좀 썼어"라는 망언을 시전하셨습니다.
그때 이 사람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안 듣겠구나 싶어 다 포기하고 마음을 추스를 겸 한참 바람을 쐬고 들어와 팀장한테 무슨 일 해야 되냐고 물어봤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TF는 조직과 역할이 다 정해져있어서 제가 할 역할이 딱히 없었거든요.
그랬더니 더 가관인 것은 나보고 인수 TF안에서 제가 할 일을 찾으라고 하더군요.
전화로는 제가 있어야 된다고 그렇게 얘기해놓고 정작 무슨 일을 시킬지 고민도 안 하고 발령을 내버린 것이었습니다.
해외사업을 같이 하던 사람들은 바빠 죽겠는데 딴 일 하러 간다고 불만이 많았고 인수 TF에서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왜 온 건지 모르겠다는 분위기라 참 난감했습니다.
인수 TF에서 할 일을 못 찾고 방황하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잡일만 했고 또다시 인수에 실패하면서 보람도 없이 원래 하던 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팀장 마음대로 역할도 없이 발령내서 일하다가 돌아온 사람한테 고생했다는 말은커녕 일이 잘 안 된 이유가 제가 제 역할을 안 해서 그렇다고 툭하면 나를 까대고 본인 없는 동안 해외사업 진척이 없었다며 들들 볶이면서 팀장이 나를 부속품처럼 여긴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때까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팀장 그리고 팀장 행동의 배경이 되는 회사가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필요하면 여기저기서 가져다 쓰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부품 딱 그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사람이 필요한 이유도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구요.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팀장이 나한테 그렇게 일을 시켰던 이유가 전 회사에서 기획업무를 하면서 보고서도 좀 써보고 숫자도 만들 줄 알다 보니 윗사람들에게 뭔가 있어 보이는 보고서를 만드는데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질 것이라는 걸 알게되고 다시 한번 회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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