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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회사는 다를까?

나름 첫 직장이었지만 그 회사에서 살벌한 일들을 겪다 보니 어디든지 거기보다 낫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새로 입사하는 회사가 훨씬 큰 회사다 보니 전 회사보다 훨씬 좋지 않을까 하는 커다란 희망을 갖고 첫 출근을 했습니다.

막상 출근해보니 팀장과 선임 팀원은 출장 가고 없었어 새로 이직한 나를 챙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혼자 멀뚱멀뚱 있다 안 되겠다 싶어 부서 문서와 보고서 찾아보며 팀 업무에 익숙해지고 있을 때쯤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팀에서 하는 일 중에 진행도 잘 안 되고 개 힘든 업무가 있는데 그 일을 맡았다가 스트레스 어마어마하게 받고 퇴사한 사람을 메꾸기 위해 내가 뽑혔다는 것이죠.


처음엔 전 회사에서 워낙 마음고생을 했던 탓에 빈자리를 새로운 사람을 채운다라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제가 잘 몰랐던 부분이 어떤 조직이라도 빈자리는 기존에 있었던 사람으로 먼저 채워보고 그래도 안 될 때 외부 사람으로 채운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순진하게 그리고 호기롭게 지내다가 팀장이 출장에서 복귀하고 본격적으로 업무에 투입되었습니다.


맡은 업무는 바로 전임자가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나갔다는 업무였는데 정작 나한테 부담이었던 부분은 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아닌 이제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산업군에서 생전 처음 보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를 관리하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전자제품 공장에서 원가 관리하던 사람한테 열대과일 농장의 거래처 관리를 맡긴 정도로 산업도 다르고 업무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우실까요?

당시에는 나에게 기회를 준 회사에 잘 보이겠다는 마음과 어떤 새로운 일도 열심히 해보겠다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던 터라 일이 낯설긴 하지만 열심히 해서 사업을 잘 관리해보겠다는 마음이 하늘을 찔렀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눈 앞에 보이는 일을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문제는 일이 시작된 배경이라던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왔는지를 잘 모르다 보니 자꾸 일이 덜컥 덜컥 멈추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업무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거나 도움을 얻으려고 하면 같은 팀원들조차 그 일에 엮이지 않으려고 하고 팀장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보고를 하면 마치 골칫거리를 들어온 것처럼 짜증을 내곤 했다는 점이지요.


처음에야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게 눈이 보이길래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좀 친하게 지내던 회사 선배와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하던 일에 대한 배경과 히스토리 등등을 듣게 되었는데 듣고 보니 이건 어머어마한 문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을 해보면 내가 다니던 회사의 공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이 골치였는데 누군가 폐기물로 물건을 만들어 팔자는 신박한(?) 아이디어를 냈고 그 아이디어로 높으신 분들로부터 칭찬을 들으신 양반들은 뒷 일은 모르겠고 일단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사업을 만들었던 것이죠.

그렇게 나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그리고 뒤에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으로 만들어진 사업은 높으신 분들에게 광을 있는 대로 팔아버린 뒤에 아무도 신경을 쓰기 싫어하는 사업이 되었고 실제로도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온갖 문제가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전임자는 만들어놓은 물건을 팔 곳도 없고 투자금은 자꾸 말라가는 문제들과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퇴사를 했고 회사 안에 소문이 나서 누구나 피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으며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을 뽑아다가 일을 맡긴 것이었는데요.

상황이 이렇게 막장이다 보니 윗분들은 위에 신나게 광을 판 이 사업에서 문제만 안 생기길 바라고 있었는데 앞에서 설명했듯이 시작부터 문제가 없을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관리하는 회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달라고 아우성이고 내가 있는 회사에서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기에 담당자인 나는 양쪽에서 치여서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돈 주는 회사에서 시킨 일이라 어떻게든 정상적인 형태로 만들어보려고 해도 관리하는 회사에 돈이 없으니 해볼 방법이 없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다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이 사업에 대해 관리하는 회사에 지원을 해주자는 결론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했는데 일단 팀장부터 보고를 받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보고를 할 때마다 온갖 짜증과 네 머리가 그것밖에 안 되냐는 별의별 얘기를 다 들으면서 몇 번의 수정 끝에 보고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버럭버럭 화를 내길래 제 표정이 굳어서 그런가 싶어 표정을 살짝 풀었더니 갑자기 정색하더니 ‘웃지 마’라고 소리 지르면서 또 지랄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사업에 대한 보고는 하지도 못 하고 제 보고 태도가 거슬리니 그딴 식으로 회사 생활하지 말라는 훈계로 그 시간이 끝났습니다.

정말 화가 났던 건 돈 받고 일하려고 있는 사람이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는 부분이었고 팀원이 보고를 할 때 아무리 이상하다고 해도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깊이깊이 화가 났었습니다.


팀장이 어떻게 나오든 관리하는 회사에 자금을 지원해줘야 하기 때문에 동분서주하다가 정부과제를 수행하면 자금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또 여러 번의 보고를 팀장에게 하며 짜증이 거의 차올랐을 무렵 관리하던 회사를 정부과제에 등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이가 없었던 건 보고를 받던 팀장이 갑자기 조직 이동을 위한 면담을 다녀오더니 저보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콧노래 부르면서 나가는 바람에 정부과제에 등록할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알고 봤더니 팀장도 그 당시 위에 임원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다른 데 가고 싶었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임원이 같이 일하자고 하니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것이더라고요.



#회사생활#두번째#업무#팀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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