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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야근도 많니 하고 술도 많이 먹어서 몸은 힘들었고 새로 생긴 회사다 보니 체계가 부족해서 직원 복지와 같은 부분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운명의 장난처럼 저에게 이상한 일을 맡겨놓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혼자 개고생 하게 만들었던 전에 있었던 조직에 복수 아닌 복수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전에 있던 팀에서 담당 임원부터 사원까지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 프로젝트의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되어 투자 승인을 받아야 하는 시점이 되었고 투자를 승인하기 위해서는 명목상 지주회사이긴 해도 제가 있었던 회사의 투자 의견을 받아오라는 윗분들 지시가 내려오게 된 것이죠.


당시 제가 있었던 회사에서 그런 프로젝트를 검토할 수 있는 조직은 내가 있던 팀뿐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프로젝트 검토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검토가 시작되고 같은 팀 사람들은 잘 됐다 하는 표정이었는데 알고 보니 제가 고생했었던, 그 사업을 만드신 담당 임원에 대한 불만들이 하니씩은 있더라고요.

그 임원분은 독불장군식으로 주변 사람들 신경 안 쓰고 일을 밀어붙이는데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들이 어디 건방지게 나에게 반대하냐는 식으로 무시하곤 했고 같은 팀 사람들도 최소한 한 번씩은 그 임원한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털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담당했던 사업의 문제점들에 대한 소문이 쫙 퍼져서 그 임원이 하려고 하는 사업은 잘 검토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들이야 있었겠지만 그 프로젝트가 승인되면 거금이 투자되어야 했기 때문에 정말 객관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정말 괜찮은 사업인지, 큰돈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글로벌 컨설팅업체를 고용해서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검토를 시작하자마자 내가 맡아서 고생했던 사업과 너무나도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공장에서 나온 처리 곤란한 폐기물 비슷한 것으로 제품을 만들어 팔아보겠다는 아이디어였는데 제가 직전에 담당했던 사업과 콘셉트는 완전히 같았고 그렇게 만든 제품을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팔겠다는 계획도 없이 품질만 좋게 만들면 시장에서 알아서 잘 팔릴 거라는,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도 제가 담당했었던 사업과 동일하더군요.


지난 사업의 경험상 폐기물로 제품을 만들 경우, 원재료의 품질이 동일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제품의 품질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균일하게 나오기 힘들었으며 누구에게 팔 것인지, 즉 수요처를 확보하지 않고 생산부터 시작하면서 발생했던 생각하기도 싫은 자금부족 문제를 겪었었고 사람들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투자 승인을 위해서는 그 부분에 대한 단단한 계획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물론 사업을 만든 팀에서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자료를 준비하는 등 긴 시간에 걸쳐 열심히 준비는 했지만 제가 고생했던 사업과 같이 무조건 사업을 만들어 내기 위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결국 만족스러운 대안을 찾지 못해 결국 사업은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차례 큰 일을 겪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지금과 같이 현장을 모르고 기획업무를 계속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 현실과 동떨어져서 듣고 읽은 것만으로 일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사업을 만들어가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저에게 현장 경험 없이 책상에만 앉아 사업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그 일을 계기로 알 게 되었고 하루빨리 현장과 시장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제가 다니던 회사는 새로 만들어진 회사라서 관리할 만한 사업은 없었고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사업개발을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사업 개발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아서 왠지 비슷한 또래에 비해 나만 뒤쳐지는 느낌이 들었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일 외적으로도 많은 것을 느꼈는데 국내외 탑 대학 나오고 국내 대기업에서 임원 또는 10년 이상 회사 생활을 한, 밖에서 보면 엘리트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상대방의 반대에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벌게져서 막말하고 직급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상상하지도 못 했던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이 얼마나 많이 배우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보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바른 지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거칠게 대할 때 저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야 그 험한 말이 그 사람의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는 증거이며 그 사람의 거친 표현만큼 그 사람이 급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사람 됨됨이, 인간성을 어떻게 길러야 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인문학 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회사생활#프로젝트#사업검토#현장경험#인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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