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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회사로 이직

사업을 하는 팀에 가서 경험을 쌓고 싶었지만 있었던 그 팀에서 내가 필요했던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필요한 사업팀이 없었던 것인지 여하튼 같은 팀에서 기획업무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니던 회사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회사에 쌓인 어마어마한 현금을 이용하여 새로운 사업분야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회사로 이직을 제안받았습니다.

계속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데가 사람을 뽑는 이유가 누가 있다 나간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아니고 그 회사에서 밀어주는 업무를 맡을 사람이 필요해서라는 것을 확인했지요.

잘 지내고 있었던 회사를 안정적으로 다닐 것이냐 아니면 해보고 싶은 일을 과감히 찾아가 볼 것이냐 한참의 고민 끝에 소개받은 회사로 이직하기로 하였습니다.


세 번째 회사에서 제가 속한 팀은 다양한 신규 사업개발을 담당하는 부서였는데 팀장은 지금까지 그 회사에서 해오던 사업과 다른 분야의 사업을 만들어서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임원들과 같은 지위 또는 그 사람들을 이겨보려는 야심 가득한 사람이었더군요.

제가 세 번째 이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팀장의 커다란 야심에 따르자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야 하는데 회사 내부에서 그런 사업개발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비록 서포트긴 해도 큰 회사에서 이런저런 사업개발 경험이 있는 나를 알게 되어 같이 일하자고 하게 된 것이더라고요.

팀장 입장에서는 세 번의 이직으로 회사에 들어온 저라는 사람은 본인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줄 수 있지만 아직 나이도 어려 사회 경험도 별로 없고 이제는 자리를 잡으려고 위에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일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일에 막 부려먹기 딱 좋은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입사를 하고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팀장이 나 들어오기 전에 윗분에게 어필한 새로운 사업에 대한 기획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른 팀원들은 눈치 빠르게 다 집에 갔고 나와 팀장만 남아있었는데 그 팀장이 특이한 점이 꼭 퇴근할 무렵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을 꺼내놓곤 하더군요.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주저리주저리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은 하는데 두서도 없었고 앞뒤도 안 맞는 말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들은 결론은 본인이 기획서 만드는데 노예가 필요하니 내가 해야 된다는 것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틀만 잡고 나머지는 다음 날 하자고 했을 텐데 그때는 멋도 모르고 그냥 하나보다 하고 일을 오늘 끝낼 기세로 시작했습니다.


스토리라인을 잡고 내용을 만들고 있었는데 기획서에 넣을 내용이라는 게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긁어 올리는, 저인망으로 뻘부터 모든 걸 싹 다 건져 올리는 식으로 정보를 찾으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정보를 찾고 정리하면서도 ‘앞뒤 내용이랑 안 맞는 이 자료는 굳이 필요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자료와 내용이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고요.

예를 들면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서 No.1 기업이 어디고 그 기업 주주를 확인하는 것까지는 필요한 정보인데 그 기업 대주주 가족이 몇 명이고 둘째 아들이 어디서 학교를 나와서 지금 어디에 있고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머 그런 류의 이해하기 힘든 자료까지 요구하는데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렇게 별의별 내용을 다 썼는데도 기억이 안 나는 거 보니까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기억이 나는 건 그 기획서가 어떤 회사를 인수하는 안건에 대한 것이었는데 인수하고자 하는 가격은 내 마음대로 적었던 것은 기억납니다.

제 나름의 경험으로 계산은 했었지만 팀장은 숫자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고 저 역시 너무 오랫동안 회사에 있다 보니 빨리 가고 싶어 디테일하기보다 큰 틀에서 숫자를 만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수금액이라는 것을 계산하고 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금액이 되어버렸고 그런 금액을 내 마음대로 정해도 된다는 게 신기하고 떨리기도 했던 기억이 있네요.


기획서를 마무리하고 (물론 절반 이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집에 가려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고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식의 야근이 찜찜하긴 했지만 이런 야근은 어쩌다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 일은 그 팀장하고 엮인, 살벌하게 겪을 일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팀장의 특이한 점도 있었지만 이상했던 회사 분위기도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팀장 위에 전무가 있었는데 그분도 특이했었습니다.

원래 회사에서 주력으로 하던 사업분야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지금까지 본인 경험과 전혀 상관없는 사업을 맡고 계셨었죠.

그렇게 맡은 사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다 보니 직원들을 직급과 나이로 찍어 누르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팀장이 전무보다 경험이 많다 보니 전무 말을 잘 안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무는 팀장에게 맨날 잔소리를 했고 그런 것 때문에 팀장도 전무가 사업도 모르면서 머라고만 한다고 짜증이 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팀장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낀 일이 있었는데 저를 팀장 쪽으로 끌어들여 이런저런 기획서를 윗분들에게 보고하고 시간이 흘러 팀장의 기획력(?)을 인정받으면서 회사 안에서 팀장의 입지가 어느 정도 단단해졌다는 판단이 되자마자 윗분들에다가 전무의 약점을 일러서 전무를 집에 보내버리더군요.

사업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지만 팀장을 통제, 관리하던 전무가 허무하게 집에 가면서 팀장도 조심하는 모습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고 본인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던 것 같았습니다.

예전 회사와 다른 회사 내 정치, 알력 다툼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아 여기는 다른 의미로 만만치 않겠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회사생활#세번째#이직#팀장#사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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