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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Jul 05. 2024

<<소설 만세>> 용기 있게 쓰기 - 정용준

요즘 산 책들을 읽느라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도서관에서 빌리기 어려웠던 이 책을 발견하고 다른 책들과 함께 빌려왔다. 오랜만에 갔더니 허기가 졌는지 책을 열 세 권이나 빌렸다. 다른 책들을 뒤적이다가 덮고 이 책을 가장 먼저 펼쳤다.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좋은 부분이 많아 살까 하다가 그러면 기다렸다 처음부터 줄 그으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아 그냥 내리읽어버렸다. 소설을 쓰고 있는 나에게 그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쓴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같이 빌려왔으나 앞부분을 읽다가 일단 덮었다. 말더듬이가 겪는 일을 어쩜 이렇게 자세히 썼을까 싶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작가 자신이 어렸을 때 실제로 말을 더듬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소설을 다시 펼치게 될 것 같다. 작가 이름을 잘 들어보지 못했던 데 비해 작품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이분이 이렇게 열심히 책을 써서 내실 동안 나는 몰랐다는 생각에 생뚱맞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을 쓰는 동안 연 수입이 400만 원 대인 적도 있었고, 인터넷이 안 되는 고시원에서 글을 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는 것인가 보다. 오히려 어려운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의 성공이 더 단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든 겪을 고난이라면 나중보다는 먼저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


인상 깊었던 내용은 누구나 글 쓰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묵묵히 앉아 쓰느냐, 안 쓰느냐가 소설가(작가)와 아닌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소설가에게도 쓸 글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한 시간이 있고,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좌절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참고 견디며 다시 쓰기를 이어가면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재능의 유무가 아닌 의지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더 이상 못 쓰겠다 싶을 때 딱 한 문장만 더 쓰자는 마음으로 쓰다 보면 다른 문장들이 손을 잡고 따라온다는 말이 재미있다. 


내면에 무언가 가득한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한다. 나는 내면에 쓰고 싶은 게 있는지 돌아본다. 그게 없다면 무엇이든 담아야 할 것이다. 빈 그릇을 쥐어짜 봐야 나올 건 먼지뿐이다. 내 그릇을 먼저 채우면 흘러넘쳐 글로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자꾸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자세히 관찰하는 눈이 아닐까 싶다. 똑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그냥 넘기는 사람이 있고, 그 장면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을 하고 결국 글로 남기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작가란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바꿀 수 있는 사람, 생각한 바를 바로 글로 쓰는 실천력을 가진 사람. 이것은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글을 남이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생각, 혹은 나 스스로 다른 글과 비교해 자기 비하에 빠지게 되면 그 글은 세상 빛을 보기 어렵다. 자신만의 일기가 아닌 독자를 의식한 글에는 저자의 용기가 스며 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오래오래 앉아 글을 쓸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한 문장, 한 문장씩.


- 본문 -


- 작가는 어구나 표현 혹은 구성이나 형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이것은 일종의 날씨처럼 소설 전체에 영향을 준다. (29쪽)


- 문장은 단어와 단어로 연결된 허약한 줄과 같다. 독자는 그로부터 이미지를 봐야 하고 색깔과 색채를 느껴야 하며 필요하다면 사운드도 들어야 한다. 때문에 작가는 단어를 놓고 애를 쓸 수밖에 없다. 하나의 단어, 단어 다음에 오는 단어, 단어끼리의 결합, 화음과 불협,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 반복되고 변주되는 리듬, 어떤 어울림과 어울리지 않음. 잘 쓰인 문장을 통해 독자는 알고 이해한다. 색감을 느끼고 음악도 듣게 된다. 나아가 작가의 의도와 마음과 메시지까지 알 수 있게 된다. 일정하게 이어지는 일관된 정서 속에서 독자는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를 걷는다. 오묘한 날씨 속에서 독자는 보면서도 모른다. 모른 채 느낀다. 빛이 있는 줄 모르고, 바람이 부는 줄도 모르고. (31쪽)


- 나는 소설을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알고 확인하는 것을 넘어 알게 된 것에 책임감을 갖고 그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그를 믿고 변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소설에 매료되고 지금도 소설을 사랑하는 핵심적인 매력이 그것이다. 뉴스는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을 중계해 줄 뿐, 그 사람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건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전후 사정과 내면과 이면에 대해 묘사하고 진술하는 일. 인물이 보인다고 하는 것을 작가도 보인다고 해 주는 일.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게 만들어 주고 그것이 허상이고 환상이라 할지라도 그의 눈에는 보인다는 것을 믿어 주는 일. 숨겨진 사연과 감춘 사건을 모두 뒤져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문장으로 써내는 일. (45-46쪽)


- 소설을 쓰기 전에는 최대한 많은 낙서를 한다. 빈 문서에 아무 말이나 계속해 본다. 아무 단어나 마구 던져 본다. (74쪽)


-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비벼 대고 끙끙대다 보면 어떻게든 글은 써진다. 아, 정말 오늘은 접어야겠네, 생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한 문장이 떠오른다. 한 문장이 써지면 그 문장이 신기하게 몇 문장의 손을 잡고 함께 찾아온다. /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쓰는 것도 아니고 막 쓰다 보면 써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소설을 쓰려고 시간을 갖고 애를 쓰고 그 앞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닫힌 문도 열리고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인다는 것이다. (80쪽)


- 어떤 사람이 소설을 쓰는가? 내면에 무엇인가 가득한 사람이 소설을 쓴다. 다른 사람이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하며 세상을 보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 세계와 현상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품고 어느 것 하나 사소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렇게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 그런 기질 속에는 엉뚱함과 고집이 있고, 의심하는 눈과 현상에 대한 회의감을 품고 있다. (128쪽)


- 소설을 쓸 때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129쪽)


-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소설을 기성 작가들의 완성된 소설과 나란히 두고 미리 절망할 필요가 없다. ... 소설을 쓰면 소설가가 된다. 더 나은 소설을 쓰면 더 나은 소설가가 되는 것뿐이다. 두려움이 커지면 자신을 비하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작품들을 자신과 비교한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은 작가의 길과는 무관한 운명이라고 여긴다.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 물론 소설가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이 주는 재능은 아니다. 계속 쓰려는 마음과 그 마음을 지켜 내는 능력과 그 능력에 의지해 소설 쓰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여러 어려움과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 내면서 계속 소설을 써 나가는 행동력, 그것이 바로 재능이다. 용기를 내는 작가가 되자. 용감하게 쓰자. (131-132쪽)


- 쓰기의 과정: 발상-구상-구성-쓰기-고쳐쓰기 (151쪽)


- 소설에는 작가기 겪은 크고 작은 사건과 경험이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도 소설 곳곳에 포함된다. 소재를 찾고 있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을 들여다보자. 웅덩이 속에 움직이는 것이 있는지 유심히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어떤 기억 하나를 건져 올리면 관련된 수많은 것들이 줄줄이 딸려 온다. 거기에 지난 시간의 감정, 그때의 분위기 등도 포함되어 있다. 기억나서 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쓰다 보면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억나면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쓸 필요가 있다. 작은 붓으로 신중하게 땅을 파고 흙을 털어내 파묻힌 옛날 물건을 바깥으로 꺼내는 고고학자처럼 한 문장씩 한 문장씩. (154-155쪽)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KsZdJ460U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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