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집어든 책 한 권을 읽고 글이란 원래 이렇게 명확하게 쓸 수 있는 것이구나 싶어 감탄했다. 상황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묻고자 하는 질문을 정확하게 던지는 것. 두루뭉술하게 돌아가거나 비겁하게 빼지 않는 문장에 글이 절로 술술 읽혔다. 부러웠다. 특히나 그 또렷함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땀 흘려가며 수많은 경험을 거쳐 얻어낸 것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처음에는 뭉툭하고 흐릿했던 생각이라도 이 사건 저 사건을 겪으면서 깎여나가 마침내 이 책 속에 날카로운 문장으로 자리잡고 앉았을 것이다.
어느 때인가부터 나는 말로도 글로도 내 생각을 또렷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이건 아마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잊어버린 것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일 것이다. 생각이 또렷하지 않으니 그 표현수단인 말이나 글에서도 모호함이 가시지 않는다. 원래 성향도 전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최근 몇 년간 적을 만들기 싫어하는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는데, 몇몇 경험과 업무의 성격이 맞물려 점점 책잡히지 않는 말만 하려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누구와든 큰 갈등 없이 두루 잘 지내는 편인 건 좋지만, 때로는 적이 생기더라도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때도 있고, 굳이 잘 지낼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웬만하면 모두와 부딪치지 않고 지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근시안적으로 볼 때 또렷한 자기 생각의 발화는 불필요한 일로 이어질 수 있고(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디 네가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원만한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나는 은연 중에 내 생각을 잘 말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심해져서 내 생각 자체가 흐릿해진 건 아닐까. 호불호가 지나치게 불분명해진 것도 그렇다. (사실 싫은 건 결국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티를 내고 마는 성격인 것 같지만.. 여튼 내 원래 성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
호불호가 없는 성격은 사회생활하기에 딱히 불편하지는 않다. 이것도 업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 분야에서는. 하지만 회피성 웃음을 넘어 진짜 내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 사회적 가면을 벗고 타인과 진정으로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 순간에는 갈등상황으로만 보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기회가 되거나 내 사람을 얻는 인연이 될 수도 있고. 일부러 싸움을 걸고 다닐 필요는 없더라도.
나도 머릿속의 희뿌연 안개 같은 생각의 덩어리를 조금 더 명확한 문장으로 적어내고 발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과 내 생각이 아닌 것을 구별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사실 그래서 내가 하려던 일도 자꾸 모호하게만 느껴졌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는 사진처럼 뚜렷하게 보고 있어야 남들에게 그 절반이라도 전달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글이 계속 흐릿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이 안개가 여러 맥락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맥락 하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왔다갔다 하면서 썼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쓸 수 있는 글을 써 보기로 한다. 이 안개를 어서 걷어내고 싶은 마음에.
*책은 김인정 기자님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