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의 주인공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미등록 휴머노이드 수용소에 잡혀와 생각한다. 어차피 휴머노이드라면 자신을 왜 이렇게 인간과 똑같이 만들었냐고, 자신을 만든 ‘아빠’를 원망한다. 어차피 휴머노이드라면 인간의 약한 구석이나 불리한 점은 빼고 만들어도 됐을 텐데, 왜 자신을 인간처럼 일정 시간을 활동하면 잠이 쏟아지게 만들었으며, 시간이 지나면 배고픔을 느끼게 했는지, 먹었으면 배설을 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또 여린 피부 조직과 연약한 관절 같은 이음매는 왜 존재하는지. 감옥과 같은 곳에서 철이는 자신의 인간 같음을 원망한다.
인간이 약한 동물이라는 것은 철이가 꼬집어주지 않았어도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자명한 명제였다. 인간은 왜 이렇게 약하게 만들어져서 하드웨어는 조금만 날카로운 물건에도 쉽게 손상되고, 물리적 충격에 크게 부서지고 망가지고, 또 소프트웨어인 마음은 어찌나 약해서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동물이 현대에 이르러서 더 이상 산짐승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외부의 공격에서 약한 우리를 스스로 구하려는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할수록 개인이 아닌 무리가 되어야 했고, 무리에는 규칙이 필요했고, 그 규칙과 제도는 수천 년의 역사에서 형태를 변형시키며 현대에는 국가와,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되었다. 그 말은 곧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의 인간은 숲 속에서 불곰을 만난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난밤에 서울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시스템이 지켜주지 않는 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약한 동물인지,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새삼스럽게 또 비통하게도 깨달았다. 철이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수용소에서 인간의 약함을 좌절하듯이,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좌절보다도 우선 충분히 슬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몸도 마음도 취약한 동물이라 필요한 만큼 슬퍼하지 않으면 마음에 붙은 살이 곪는다.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또 그들 주변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