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체험학습 논란이 뜨겁습니다.
작년 교내 학교운영을 위한 대토론회(그러니까 내년도 학교 운영을 위한 교내교사 전체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에서도 역시 현장체험학습이 뜨거운 감자였어요. 관리자는 이 문제를 가장 빠르게 직감하고 이 부분이 원만히 ok될 수 있도록 머리를 쥐어짜셨겠죠.
신기한 것은...
신기한 것은, 현장학습을 가지도 않는 교무부장이 이를 적극 어필하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너무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안을 하고 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도 아주 멋지게 당당하게 선생님들께 교육헌신자를 자처하며 크게 주장하셨어요.
모두가 YES 하는 학교 풍토에서 NO를 하기란....
"교장선생님 현장체험학습 반대합니다. 현재도 현장체험학습 사고로 고통받으면서 조사를 받으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이를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교장선생님 현장체험학습 반대합니다. 고학년에 아주 평범한 학생들을 인솔하고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품행장애라던가 정서장애 행동장애 혹은 그에 준하는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 늘 있고 그 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은 늘 시한폭탄을 안고 적진으로 가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특히 저학년은 더더욱 힘듭니다"
신기한 것은...
이번에는 내년에 다른 학교로 가실 연구부장이 나섰습니다. 학부모의 설문결과는 몇 프로이고 간절히 원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선생님들께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발언입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갈 일이 없는 떠나실 연구부장이 총대를 멥니다.
그렇더라도 현장학습 중 이벤트나 사고는 흔한 일인데 누가 책임을 지느냐 나는 못 진다라고 강하게 항의했죠.
또 하나 신기한 것은...
갑자기 교장선생님이 이나라 교육을 위해 몸 바칠 각오를 내비치시는 겁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문구를 넣겠습니다. "
정말 바보 같은 20년 경력이 부끄러운 나
교장선생님이 그리 말씀하시는 것을 20년 평생 본 적이 없기도 하고, 기관장이 책임을 지겠다고 까지 하니 더 이상 발언하지 않고 회의는 끝났습니다. 2023년 12월의 일입니다.
정말 정말 신기한 것은...
교무부장은 비담임으로 보직받고, 연구부장은 다른 학교로 떠났습니다. 모든 기안은 전년도 양식 그대로 해당 학년부장이 기안하고 그 어디에도 교장선생님의 책임을 지겠다는 문구는 삽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착한 선생님들과 내 삶에 바쁜 나 같은 교사는 이 모든 '눈뜨고 코 베어가는 현실'을 그냥 이유 없이 당하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정 맞기 싫어합니다. 나의 발언조차도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승진에는 뜻이 없어 관리자에게 잘 보일 일도 없고, 학교의 자잘한 이권 즉 학년배치나 업무배치 성과급이나 보직수당 등등 자잘한 이권에 별관심이 없기에) 가능한 발언이었을 뿐입니다. 아무도 떠들지 않고, 학년 부장님들은 착실하게 자신이 맡은 현장학습 A to Z를 충실하게 하시느라 고생이셨고요.
정말 정말 정말 신기한 일도 생겼습니다.
현장학습을 두 반이 하나의 버스를 타고 출발했죠. 교사 두 명이 탑승하고 있었고요. 겨우 1시간 가는 그 시간 동안 몇 명이 토를 하기 시작합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교사는 벨트를 풀고 아이들 케어를 다녀야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옆 반 학생 한 한 명이 손을 들었어요. 급똥이 마렵다는 겁니다. 순간 수학여행 급똥 사건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 선생님은 그 아이 손을 사랑스럽게 꼭 붙들고 내렸습니다. 물론 저에게 그 반 학생들을 신신당부하면서 말입니다. 졸지에 두 반을 드 넓은 현장학습 장소까지 데리고 가야 했어요. 그 선생님은 택시를 타고 온다 했어요. 007 작전이 개시되었어요. 먼저 도착한 두 반과 합류해야 티켓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롯데월드 단체입장은 10시에 동시에 진행되는데 그야말로 썰물 밀려가듯 들어가야 하더라구요. 그 아수라장에서 두 반 아이들 세워두고 티켓 가진 먼저 도착한 선생님들 찾아 헤맸고, 다행히 만났어요. 우리 아이들도 입장시켜야겠기에 식권과 입장권을 그야말로 콩 튀기듯 나누어 준 후에, 뒤이어 올 옆반 선생님과 급똥학생을 기다리는 일도 해야 합니다. 분신술은 이때 필요하죠. 두 반을 데리고 인솔할 교사 1명과, 단체매표소 앞에서 대기하다가 오실 옆반 선생님과 급똥학생에게 007 가방 전달하듯 표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할 또 하나의 내가 있었어야 했죠.
그래도 이 모든 스릴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교사의 고통과 치명적일 수 있는 위기로 인식되고 기록되어 전해지지 않습니다. (교사입장의 현장학습 백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저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부모가 그리 바라시는 '현장체험학습'의 판타지에 묻혀 버립니다. 아주 0.0001%의 교사 한 명만 조용하면, 그리고 가끔 딱 한 명의 선생님이 차마 제자를 잃은 아픔을 삮일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소송에 휘말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그러면서도 조용히 퇴장하면, 그러면 되는데 '교사'가 떠든다 합니다. '철밥통'이 시끄럽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신기한 것은....
이 모든 일은 묻혀 버린다는 것입니다. 관리자가 와서 당시 버스에서의 이벤트를 묻고 확인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이슈가 되고 교사의 어려움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거죠.
마지막으로 신기한 것은...
어제 식당에서 덩치가 아주 큰 두 학생이 밥을 먹다가 더 받겠다며 손을 드는 과정에서 식당 의자가 넘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당장 교장선생님께서 영양사 통해서 (이것도 참 신기해요. 직접 하지 않아요. 영리하시죠.) 우리 반에 전화를 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두 아이 지도 잘하라는 거죠. 덩치가 큰 두 아이를 그쪽 자리에 앉히지 말라는 지시입니다. 지당하시지만 현장학습 사안 안본눈 하시는 것과 달리 무척 꼼꼼하고 자상하시고 민감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세심하신 관리자께서 현장체험학습에는 대범해요. 에브리씽 오케이입니다. 큰소리 탕탕 치시며 유관순 누나처럼 본인이 모두 책임지시겠다고 기안문에 남기겠다고 까지 큰소리치고도 '입을 씻습니다.' 그 어떤 문구도 들어가지 않았죠. 함께 책임지겠다던 교무부장도 일절 침묵이었죠. 본인은 아이들 인솔할 일이 이 학교에서 다시는 없을 테니까요. 비담임으로 데리고 현장학습을 가지 않습니다.
그 모든 현장에는 책임자인 담임교사 딱 한 명만 세워두면 만사형통이죠. 무슨 사안이 있었는지 내알바 아닌 두 분이었습니다.
학교는 이래 신기한 일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도 조용히 저도 물론 작년처럼 어김없이 현장학습을 다행히 무사히 다녀왔어요.
요즘 실태를 보면 정치기본권 즉 단체행동을 못하는 교사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젠 관리자도 공공연히 이용하는 듯했습니다. 핵심트리거는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정치기본권'이래요. 침묵하는 50%를 등에 업고 30%의 교사가 단결해야 가능합니다. 교직을 걸고 희생했던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30%가 단결해야 겨우 겨우 가능해요. 가장 어려운 것은, 가장 아픈 것은 침묵하는 50%를 업는 일입니다. 침묵하는 50% 중 훌륭한 교사들도 많이 있고요.
(글이다 보니 살짝 다른 뉘앙스를 풍겼지만, 내 옆반 선생님도 누구보다 훌륭하시고, 하물며 이 글에 등장하는 교장선생님 또한 상위 20프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연구부장님 교무부장님 수고는 또 말해 뭐해요? 착한 선생님들은 이 분들을 롤모델 삼아 조용히 헌신하죠)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