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의 흥행 비결은요"
넷플릭스에 공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었다.
개봉 4일만에 넷플릭스의 본고장 미국에서 1위를 하는가하면 곧이어 프랑스, 영국, 일본 등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테드 서랜도스가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의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될 것'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전 세계의 폭발적인 반응에 온 국민은 물론 방송국 뉴스 제작진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국내 뉴스 매체들은 일제히 오징어 게임의 흥행 소식과 세계인들의 반응을 발빠르게 전했고, 국제뉴스팀에 속해 있는 나 또한 외신들의 반응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흥행 분석을 위해 해외 전문가의 시각이 필요했다.
인터뷰를 위해 다양한 학자, 교수, 평론가 등이 후보에 올랐는데 그중에서도 한류에 관해서라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후보에 오르셨다. 바로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콘텐츠의 성공을 예견하시고, 미국 강단에서 '앞으로 시장경제에서 BTS를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발언으로 유튜브에서 유명세를 얻으신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샘 리처드 교수님이었다.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선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주셨고, 직접 교수님을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인터뷰 당일 이틀전 막 정주행을 마치셨다는 교수님은 마지막 두 에피소드는 일부러 천천히 아껴보셨다고 한다. 게다가 스포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을 때엔 일부러 자리를 피하셨다고 ㅎㅎ.
이미 오래전부터 BTS를 비롯한 K-pop과 한국 콘텐츠의 가능성을 높이 보셨던 교수님께선 한류의 성공 원인이 한국 특유의 '겸손'으로부터 나온다고 짚으셨다. 부족한 점에 집중해 결점을 보완하며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태도가 더 좋은 품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나의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스위트 스팟'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이전 글 참고: "나의 커리어 스위트 스팟(Sweet Spot) 찾기" https://brunch.co.kr/@serena-yeon/3 ), 한국인들은 창작을 할 때 스위트 스팟, 즉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최적의 지점'을 굉장히 잘 찾는다고 설명하셨다.
여기서 스위트 스팟에 대한 의미를 좀더 자세히 여쭙자, 이런 설명이 돌아왔다.
"제가 강연을 하며 통찰력 있는 얘기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과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가끔씩 정말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그 '스위트 스팟'을 찾으면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오고,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받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많이 할수록 더 자주 그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건 모든 아티스트들과 창작자들에게도 동일할 것 같아요. 실력을 갈고닦고 전문성을 기를수록, 그리고 양 뿐만이 아닌 질에 집중할수록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게 되는 무언가를 만들게 되는거죠."
교수님은 본인도 수천개의 강연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며 이걸 잘 해내는 한국 감독님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덧붙이셨다.
"한국의 창작자들은 일관성있게 '스위트 스팟'을 발견합니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을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좋은 품질의 노래와 드라마, 영화들이 나옵니다."
"TV가 되었든, 영화가 되었든, 음악이나 춤, 어떤 것이 되었든 항상 스위트 스팟이 있는데, 그 지점에 도달해야 진정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로서 바라본 관점 또한 나눠주셨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수 세기동안 내려오는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이라는 건데,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오징어 게임 속 등장 인물들을 통해 빈부격차와 사회구조적 문제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한국이라는 나라를 대입해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오징어 게임 속 '가난한 사람들'은 20세기 말 경제 대부흥 이전의 가난했던 한국으로, 오징어 게임 속 '부자들'은 지금의 잘 사는 한국으로 대입해 볼 수 있고, 그래서 마치 오일남이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진 지금 한국은 더 행복해졌는지를 묻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세계 현대사에서 50-60년 안에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사례는 전례가 없다며 한국을 높이 평가하셨지만, 오일남을 통해 던지신 메세지는 곰곰히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숨가쁘게 달려오며 단기간 내에 눈부신 성취를 이룬 한국은 과연, 정말로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며칠 전 미국 퓨(Pew)리서치센터에서 전 세계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항목을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14개국이 '가족'을 꼽은 반면 유일하게 한국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던 기사가 떠올랐다(조선일보 - “17개 선진국 중 한국만 ‘물질적 행복이 가장 중요’ 응답”).
여전히 한국에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있고, 올해에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한 것을 볼 때
어쩐지 한편으로 씁쓸함이 남는 메세지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현 시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질문을 드렸다.
"BTS와 기생충, 그리고 이제 오징어 게임의 흥행으로 한국문화가 세계 정상에 오른 지금, 현 지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돌아온 교수님의 답변은 의외였다.
문화의 중심에 있지 말고, 변두리로 가야합니다. 그들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해요. 문화의 중심이나 정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사람들을요."
"창의성은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존재합니다. 변두리로 가야해요. 제가 보기엔 그게 앞으로 한국이 해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질 거에요. 왜냐면 성공을 할 때마다, 과거의 성공에 기대게 될수록 역동적인 창의성에서 멀어지게 되거든요."
"아이러니해요, 그쵸? 한국이 소프트 파워를 가지게 될수록 문화의 중심에 가까워져요."
어느 순간부터 K-pop 아이돌이 모두 다 똑같아 보이고(교수님도 이 점을 언급하셨다. 전세계 사람 눈은 다 똑같나보다), 한 번 히트를 친 유형의 오디션, 예능, 쇼 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눈앞의 쉬운 성공에만 집중하게 되면 조용히 변두리에서 '고유의 무언가'를 하고있던 다른 신생 문화권에 문화강국 지위를 뺏기게 되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정상의 자리에 오른 지금 일시적인 유행을 좇기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위험을 감수하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 세계를 탐험하고 실험해볼 수 있는 창작 환경이 적극 지원되어야 할 것이고, 이제 한국이 세계 컨텐츠의 중심지로 많은 자본이 유입되며 충분한 발판이 마련된 만큼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제2의 봉준호와 황동혁의 탄생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샘 리처드 교수님의 영향력은 역시 대단했다.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된지 이틀만에 조회수가 20만을 넘었고 (인터뷰 방송시점: 10월 27일),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36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교수님의 조언에 공감하며 댓글을 달았고, 인터뷰 영상이 여기저기 공유되거나 다양한 TV 프로그램 및 유튜브 채널에서, 그리고 심지어 국회에서도 언급이 되는 것을 보며 직접 제작한 콘텐츠가 바이럴해지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 경험을 통해 컨텐츠는 보편적(universal)인 내용을 담을수록,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맞추어서(timely) 통찰력 있는 인사이트(insight)를 담은 내용을 전달할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있고 유의미한 콘텐츠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오징어 게임이 시즌2 뿐만이 아닌 시즌3까지도 제작 논의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교수님께서는 재창작을 삼가야 한다는 조언을 주셨지만, 황동혁 감독님의 확고한 창작 세계관과 독보적인 연출력이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돌풍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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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터뷰를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공유합니다. 교수님의 메세지가 좋아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6yl8Hnl6v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