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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Apr 20. 2022

영어 울렁증이 있는 영어작가

이놈의 영어 ㅠㅠ

아리랑TV 영어작가, 다큐멘터리 해외 석학 섭외, 국제뉴스 영어작가.


그동안 나의 이력과 '영어작가'라는 타이틀만 본다면 아마 내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거나 적어도 영어에 불편함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 공부를 해도, 유학을 다녀와도,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영어는 늘지 않는지.

외국인과 얘기해야 하는 상황엔 혀가 얼어버리고, 말도 버벅거리니 영어 울렁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방송국 영어작가로서 평소 다양한 업무를 하는데, 영문 기사를 읽거나 리서치를 하고 해외 담당자와 이메일로 소통하는 등 '읽기'와 '쓰기'가 주가 되는 업무들은 사실 비교적 쉽고, 편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듣기'와 '말하기'가 집중적으로 요구되는 실전 인터뷰이다.  


특히나 가끔씩 대단한 분들을 직접 모시고 단독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면 며칠 전부터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여기서 대단한 분이라고 하면 가령..



대단한 분 1.

미드 <로스트>의 대니얼 대 김 배우



대단한 분 2.

소설 <파친코>를 드라마로 제작하는 데 큰 공헌을 하신 총괄 프로듀서 '테레사 강'


그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섭외해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지만 이렇게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한 분들을 인터뷰하게 될 때면 정말 큰 부담감이 느껴진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답변 내용을 알아듣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키워드를 캐치해 그 다음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하며

적절한 리액션도 틈틈히 해야 하고,

전반적으로 대화의 흐름도 주도해야 한다.


진땀을 빼며 인터뷰를 하다보면 속에서 절로 신음소리가 난다.  

'아.. 한국말로 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이보단 훨씬 더 잘 했을텐데..'


잔뜩 긴장했던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하찮은 내 영어실력을 비관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놈의 영어는 정말 늘지도 않는구나..!’



인터뷰를 잘 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준비를 한다.  


인터뷰 질문지나 대본을 달달 외우고,

충분한 사전조사를 통해 답변으로 나올 법한 영어 표현들을 숙지하고,

또 원어민 튜터에게 질문 표현이 자연스러운지 교정을 받거나

튜터와 대화를 하며 입을 미리 풀기도 한다.


어느 날은 평소처럼 튜터와 함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좀처럼 늘지 않는 영어에 나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고, 수업 내내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것으로 유명한 튜터는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냥 아는 단어들로 얘기해도 돼. 꼭 어려운 표현을 쓰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자신감을 가져."


튜터의 따뜻한 위로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영어와 씨름하고 있는 것도 결국엔 심리적인 이유에서 비롯됨을 느꼈다.


실수하거나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기대에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

잘보이고 싶은 마음.


생각해보면 결국 인터뷰도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인터뷰이와 대화 코드가 잘 맞으면 영어도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지만,

반대로 인터뷰이와 호흡이 잘 맞지 않거나 답변 내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 당황하는 바람에 영어도 버벅거리고, 알고있던 표현들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렇듯 영어도 결국은 소통의 수단일 뿐이고,

그 너머에 있는 본질인 '사람'과 '심리'를 먼저 파악한다면

어쩌면 인터뷰가 조금은 더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전, 영어로 된 질문지를 미리 연습하고 있다.



영어로 생긴 자괴감과 비루한 내 영어실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던 중, 한 외국인 리포터가 떠올랐다.


기자회견 장면에서 우연히 보게된 그는 남미 출신의 리포터로, 유명한 한국 배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툰 한국어로 더듬더듬 질문을 해나가고 있었다. 한국어는 비록 서툴고 어색했지만 상대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모습에 진심이 느껴졌고, 그런 노력이 가상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모습도 그와 같을지 모르겠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부단히 공부하며 상대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 깊은 교감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하지만 언어만 다를 뿐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는 왜 그리 관대하지 못한건지.


어렵고, 불편하고, 긴장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테니

부단히 애쓰는 나의 노력에도 충분한 인정과 칭찬을 해주어야 겠다.




* <로스트> 배우 '대니얼 대 김'  인터뷰 : https://www.youtube.com/watch?v=83dGc3Y9WlU


* <파친코> 프로듀서 '테레사 강'  인터뷰 : https://www.youtube.com/watch?v=2yoEAltEMGs


* <파친코> 제작 비하인드 : https://www.youtube.com/watch?v=eeWMqwGmR5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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