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커뮤니티를 시작하며, 그 뒷이야기
문과생이었던 나는 대학 졸업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방황했다. 일하는 분야는 1-2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바뀌었고, 내게는 특출난 전문성도 진득하게 한 가지를 파는 끈기도 없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공기관 > 중소기업 > 방송국 등 다양한 규모의 조직을 경험했고, 통번역 > 정치외교 > 출판 > 디자인 > 작가 등 분야와 직무도 일관성 없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나의 재능은 늘 애매했다.
영어를 할 줄 알지만 썩 자신 있게 내세울 수준은 아니었고,
디자인 감각은 있었지만 밥벌이를 할 만큼의 재능이 되진 못 했다.
또한 작가가 되겠다는 큰 포부에 비해 글을 썩 잘 쓰지는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도 여기까지구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나의 애-매-함에 몸서리를 쳤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사회 경험이 쌓이고 그럭저럭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직업을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저는.. 글도 쓰고, 영어도 조금 하고, 디자인도 좀 할 줄 알아요.“
사회 속 나의 역할을 또렷이 소개하기 어려울 때 오는 난처함이란. 부단히 배우고 도전함에도 아웃풋이 없을 때의 좌절감이란. 난 그래서 대체 뭘 하는 사람이지?
내게는 특출나게 내세울 만한 한 가지의 재능은 없지만, 그래도 '할 줄은 아는' 애매한 실력들이 서너가지 있다. 그리고 이런 애매한 재능들이 모여 내향인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송작가로 일하며 키운 취재 경험으로 내향인 인플루언서들을 섭외해 인터뷰했고,
디자인 기술을 익혀 놓았던 것이 컨텐츠 제작과 브랜딩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작고 소중한 애매한 재능들이 모여 나름의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역시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던가. 어디에 내놓기 애매한 기술과 경험들이 얼기설기 모여 그럴싸한 모양새가 나왔다.
내향인 커뮤니티를 만들기까지 나름대로 요긴하게 사용된 나의 애매한 재능들을 정리해 보았다. 각 재능에 매겨진 점수처럼, 뾰족한 하나의 기술이 있기보단 대부분의 재능들이 3점과 4점 사이의 어중간한 실력을 보인다.
내가 가진 재능 중 그나마 제일 자신 있는 기술이 아닐까 싶다. 특정 주제에 적합한 사람들을 발굴해 연락처를 알아내고 섭외하는 일이 참 재미있다. 내향적인 내겐 수려한 말솜씨는 없어도 시세와 흐름을 관찰하는 눈이 있다. 그동안 인터뷰이 후보로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이들이 많았는데, 그중 여럿을 인터뷰했고 지금도 인터뷰 리스트는 계속되고 있다.
낯가리고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지만 일대일로 진행되는 인터뷰는 생각보다 해봄직 하다. 또한 이메일을 통한 서면 인터뷰가 가능하기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2022년 퇴사 후, 약 3개월간 운이 좋게 뉴욕에서 출간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됐다. 서울과 뉴욕의 유명 셰프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을 집필하며 작가로서 처음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아쉽게도 정식 출간이 되지는 못했지만, 실제 내가 쓴 글이 인쇄되어 책자로 발행된 것을 보았을 때의 감격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무엇보다 이때의 집필 경험으로 가독성이 좋아지는 글을 쓰는 방법과 기초 에디팅 실력을 배웠고, 이는 내향인 커뮤니티 운영에 필요한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일, 오디언스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 컨텐츠를 작성하는 일, 정기적인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일 모두 좋은 글쓰기와 에디팅 실력을 필요로 한다.
커리어 방황을 하는 동안 관심을 갖고 기웃거리던 것이 디자인이었다. 문과생은 역시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포토샵 등 다양한 디자인 툴을 배우고 익혔다. 심지어 3D 툴까지 습득해가며 학원과 온라인 클래스, 개인 과외까지 적잖은 금액이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뛰어난 천재들과 비교해 여실히 드러나는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는 포기하게 됐다. 교육비로 들어간 금액은 아까웠지만, 브랜딩과 마케팅에 있어서 시각 효과가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깨달았다.
디자인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과 함께 미적 감각을 살릴 수 있게 되었고, 브랜딩에 필요한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 이런 감각과 기술은 컨텐츠 제작에 있어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키워드와 맥락을 엮는 것을 좋아한다. 눈에 띄는 공통점들을 찾아 한데 묶어두고, 서로 비슷한 것들을 연결해 주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특성이 내향인 커뮤니티를 만들며 잘 드러난다.
내향성 키워드가 들어간 책, 예능, 뉴스, 숏츠, 밈, 블로그 등을 모조리 수집하며 이른바 ‘내향인 수집가’가 되어가고 있고, 이 과정이 꽤나 재미있다.
연결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특정 업무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재능있는 팀원을 모집하거나, 인터뷰에 참여해 줄 내향인 혹은 커뮤니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모으기도 한다.
- 재능있는 사람들을 찾아 전문성 연결하기 (팀원 관리, 네트워킹)
-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내향성 컨텐츠 모으기 (큐레이션)
- 내향적인 사람들 연결하기 (잠재적 협업 발굴하기)
내향인 커뮤니티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홈페이지였다. 코딩을 할 줄 몰랐지만 아임웹이라는 웹사이트 빌더를 통해 구글링을 해가며 직접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예전에 스마트스토어의 해외 버전인 Etsy Shop에 빠져 온라인 샵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데, 이때 배웠던 작은 지식들도 브랜딩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브랜딩 / 카피라이팅
- 내향인 커뮤니티의 이름 '샤인(shine)' 작명
- From shy to shine 슬로건 아이디어
- 브랜드 대표 칼라와 톤앤매너 설정
홈페이지 제작
이제는 코딩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다. 검색을 해가며 간단한 사용법을 익힐 수 있기에 기본적인 틀은 제작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웹사이트를 만들고 싶다면 외주를 맡기는 것이 더 좋다.
독학하기 / 새로운 것 배우고 시도하기
맨땅에 헤딩을 해본 경험이 많다보니 새로운 분야를 시작할 때 필요한 정보를 찾고 습득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무엇이든 0에서 1을 만들고자 한다면 독학과 주체적인 학습 의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재능의 애매함으로 인해 고민도 괴로움도 많았던 시기에 보게 된 한 프로그램에 대해 나누고 싶다.
지금은 유명해진 가수 이승윤을 배출해 낸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이었는데, 당시 가수 '30호'로 소개된 이승윤은 파이널 무대를 앞두고 그동안 가졌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어디서나 애매한 사람이었거든요.
충분히 예술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대중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락도 아니고,
충분히 포크도 아니고,
"하지만, 제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걸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발언을 마치고 무대에 오른 이승윤은 패널들을 충격에 빠뜨리며 <싱어게인> 역대급 조회수를 터뜨렸다. 심사위원이었던 가수 유희열과 이선희는 "애매함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로 이승윤만의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다"며, 계속해서 애매할 것을 권했다.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이라는 뜻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만능인'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애매한 무형의 존재들이 융합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어중간한 재능들로 인해 몹시 괴롭다. 전문 작가나 전문 디자이너도, 전문 예술인도 아닌 나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치열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뾰족한 한 가지 기술이 있거나 특출난 재능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 그들 또한 피나는 노력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일테다. 애매한 재능이란 씨앗에 계속해서 물을 주다보면 어느순간 흩어져 보이지 않았던 뿌리들이 연결돼 더 큰 시너지를 내고, 가수 이승윤과 같이 더 많은 것들을 대변할 수 있는 날도 언젠가 오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