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유학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억대 연봉을 벌기까지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 20살 때 (고3 겨울 방학이었어요)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영어를 못하는 상태로 도피 유학을 왔습니다. 학교를 다니기는커녕 어학연수로 랭귀지 스쿨을 통해 온 학생비자 신분이었죠. 그랬던 제가 외국인 신분으로 미국 취업도 이직도 해보고, 취업 비자도 받아보고 이직하면서 취업 비자를 옮겨도 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빅데이터 분석 일을 하면서 억대 연봉을 벌고, 최근 영주권을 받으면서 신분 제약도 사라졌어요. 제일 중요한 건, 미국인 남편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 댓글로 질문을 주시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서 오늘은 제가 혼자 유학을 와서 잘 될 수 있었던 이유 다섯 가지를 얘기해보겠습니다.
1.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셨고, 항상 내가 잘할 거라고 믿어주셨으며, 한 번도 pressure(잘해야 한다 라는 압박)을 준 적이 없다.
유학은 돈이 너무나 많이 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돈이 부족하면 모든 게 힘들어집니다. 저희는 외국인이라 학비는 보통 몇천만 원을 (차를 몇 대를 뽑을 수 있었던 돈) 일시불로 내고, 백만 원씩 하는 월세에, 특히 저는 유학 대부분을 물가가 제일 비싸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경제력이 없었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일이 바쁘셔서 저랑 통화는 2주일에 한번 / 한 달에 한번 정도 했는데 뭘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으셨고 항상 건강한 지 물어보고,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믿어주셨어요. 사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고졸이고 영어를 못하시기 때문에 제가 성적표를 보여드려도 읽지 못하시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버클리에 편입했을 때 좋은 학교에 붙었다고 얘기를 하긴 했지만 버클리가 뭔지도 잘 모르셨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뭘 물어봐도 "잘 생각해보고 너한테 맞는 결정을 해"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항상 같은 대답이었지만, 그 대답을 들었기에 더욱 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3개월에 천만 원씩 생활비를 보내주고, 1년에 5천만 원씩 학비를 내시면서 막상 제가 뭘 하는지는 물어보시지 않으셨네요 ㅎㅎㅎ 그리고 제가 시험을 망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실패한 얘기를 하면 "어쩔 수 없지. 노력했으면 됐어. 다음번에 더 잘하면 돼"라는 답변을 해주십니다.
이렇게 부모님이 푸시를 하지 않으면서 완전한 서포트를 주셨기 때문에 더욱더 스스로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2. 호불호가 뚜렷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즐기면서 하고 한 번 해보고 싫어하는 건 잘 안 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뚜렷하면 고민하는 시간이 거의 안 들고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해내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고 그래서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통계 수업을 들어보고 통계학으로 쉽게 전공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꿈은 수학선생님이었고 가르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튜터링을 하면서 영어를 늘리고, 돈을 벌면서, extra curricular (편입할 때 이런 다른 활동 한 기록이 필요합니다)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하는 편입니다.
대부분 시도는 해보지만 한 번 싫어하는 건 잘 안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운전을 안 하는 데요. 편입으로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LA, 샌디에이고 등등 캘리포니아에 많은 학교들을 붙었는데요. 엘에이나 샌디에이고에 갔으면 제가 싫어하는 운전을 해야 했을 텐데, 버클리에 가서 운전을 안 할 수 있었습니다. 버클리에서도 차가 있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도시가 작고 밀집되어 있어서 차가 없는 학생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뚜렷해서 큰 결정도 잘 내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요
3. 성격이 활발하고 사람 만나고 노는 것, 교수님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국 대학생 때는 소심하고 혼자서 있는 성격보단 사람 만나고 노는 거 좋아하는 성격이 더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지금은 저도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서 예전에 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집순이로 많이 변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친한 친구를 만들기 가장 쉬운 방법이 동아리인데요. 저는 통계 동아리랑 계리사 동아리 두 곳에서 officer로 있었습니다. officer로 있으면 동아리 홍보라던지, 회사와 연락해서 인포세션을 organize 해야 한다던지, 리트릿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는 거요)에 간다던지 할 일이 많아집니다.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 이런 거 하는 게 다 재미있었고 그래서 영어도 더 잘 늘 수 있었어요.
배울 때도 혼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보고 공부를 한 뒤에 교수님 오피스 아워 (질문받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에 항상 가서 교수님한테 질문을 해가면서 더욱더 깊이 배웠습니다. 버클리는 학생수가 많다 보니 거의 모든 오피스 아워에 가서 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ㅎㅎ... 대학원 때는 사립 카네기 멜론을 가서 그리고 석사였기 때문에 학생수가 적어서 질문 하기가 더 쉬웠는데 역시 대부분의 오피스 아워를 가서 직접 교수님과 얘기하면서 배우는 편이었어요. 혼자서 공부하는 것은 당연히 선행되어야 하고 이렇게 교수님과 얘기를 하면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제대로 배울 수 있더라고요!
4. 걱정이 별로 없고 긍정왕이라서, 내가 노력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안돼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퀄리티 중에 제일 좋은 게 아닐까 싶은데요. 걱정을 잘 안 하시는 care free 한 엄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걱정을 잘 떨쳐내는 편입니다 (요즘은 나이가 드니 이런저런 고민이 생기는 거 같은데 20대에는 친구들이 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물어볼 정도로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위에 1번에서 얘기했듯이, 저희 부모님은 뭐가 잘 안돼도 괜찮다고 하시기에 좀 더 두려움 없이 큰 도전들을 할 수 있었어요. 잘 안돼도 뭐 배우는 게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도전을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미국에 도피 유학을 처음 나왔을 때도 어학연수 다니면서 다음 스탭을 생각해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왔고, 미국에 있다 보니 쉽게 커뮤니티 컬리지를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취업을 할 때도 내가 잘하면 잘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안되면 한국에 가면 되지 라는 백업 플랜이 있었기에 조금 더 스트레스받지 않고 취업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신분 문제 / 언어 장벽 / 문화 차이 / 정체성 혼란 등등으로 고민과 걱정이 많은 유학생활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에이 뭐 안되면 한국 가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으로 걱정을 내려놓고, 실제 행동으로는 지금 주어진 과제인 미국 취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실 고민과 걱정은 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제가 월마트에서 일했을 때 고민과 걱정이 많아서 악몽을 꾸고 그랬는데요. 그 악몽을 없애버린 건 대학원 합격 오퍼였어요. 고민과 걱정이 많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고, 그걸 해결하려면 결국 행동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항상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항상 있었고 도움을 기꺼이 받는다.
저는 항상 주변에 귀인들이 있었는데요. 그런 귀인들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걸 꺼려하지 않았어요. 커뮤니티 컬리지 다닐 때는 그 당시 남자 친구가 편입을 준비하고 있어서 그걸 따라 했어요. 그리고 대학 가서는 동아리 친구들이 레주메는 어떻게 쓰는지, 네트워킹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을 가르쳐줬습니다. 대학원을 준비할 때도 대학교 친구가 이미 cmu에서 석사를 했어서 그 친구 얘기를 듣고 아 거기 좋구나 하고 지원을 했습니다. 취업 준비할 때도 링크드인을 통해 사람들한테 연락을 해서 리퍼럴을 몇 번 받았고요. 미국 유학 /미국 취업 그리고 취업하고 나서 회사 생활도 혼자 하는 건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사람들한테 말을 해야 하고 그 도움을 스스럼없이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다섯 가지가 제가 미국 유학 성공으로 이끌어내는데 정말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