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장이 66년 만에 문을 닫았음을 신문 칼럼을 보고서야 알았다.
70mm 대형스크린에 웅장한 사운드 맛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극장이었으며 그 위용을 한창 떨치던 60•70년대 극장계를 호령하던 대작 흥행의 으뜸공간이었다.
영화 상영 사업의 패러다임 변화로 한 시대를 대변하던 황금기 충무로 영화 문화 소통 공간이 이렇게 뒤안길로 저물고 말았다.
내가 기억하는 대한극장의 추억을 3가지로 정의해 본다면...
벤허(아버지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나의), 마지막황제(내 친구 금미의)이다.
아버지는 벤허를 평생 본인의 역작으로 총평하곤 했다. 1962년 벤허 상영 당시 극장포스터의 말 그대로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감동”이 아버지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한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같은 걸 읽고 괜스레 시답지 않게 건방져 있던 10대의 어느 날, 가족들과 식사 도중 학교에서 벤허 단체관람을 가게 되었는데 그런 기독교적 색채의 성서 교훈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고 툭 말을 던졌다.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종교를 떠나서 인생의 최고의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며 예술 문화에 대해 단순한 흑백 편견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인생 역작은 다시 오지 않는다며 계속 관람해야 한다며 은근한 압력 아닌 강요 비슷한 걸 하셨다. 결국 나의 어릴 적 시건방진 편견으로 나는 단체관람을 하지 않았는데…...
나이를 먹고 보게 된 벤허는 아! 아버지 말 잘 들을걸 하는 아쉬움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에 본 글래디에이터도 벤허와 견줄 수 없었고 이미 내 마음속의 벤허는 기독교적 호화 스펙터클 영화의 한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흠모하는 영웅 중 하나인 T.E. 로렌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대한극장에서 70mm 대작으로 보게 되던 그날을 기억한다. 패밀리레스토랑의 티켓 당첨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는 행운을 거머쥔 거였다. 늘 그 광활한 사막의 풍광과 종횡무진 누비는 전투 장면들을 비디오화면으로 꽤나 답답해하던 나로서는 그 기쁨과 흥분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날 우리 좌석 앞쪽으로 사람들이 줄줄이 가서는 뭔가를 받아(싸인) 가길래 뭐지? 했더니 뒷줄에 계시던 분들이 아! 탈바가지 몰라요? 탈바가지! 탈바가지라뇨? 내가 되묻자 아 그 개그맨 있잖아요 남희석이라고 그때 나는 탈바가지가 누구인지 처음 알았다. 그 탈바가지분도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런 영화상영권을 얻다니 하며 행복한 동질감에 젖어서 로렌스의 대사처럼 it’s a clean 한 사막을 원 없이 한없이 눌린 엉덩이 가끔씩 들썩거리며 3 시간 넘게 보았다.
내 친구 금미는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하루 월차를 받아 행복하게 사용하고자 영화 마지막황제를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난 뒤 자금성의 웅장한 모습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황제에서 시민으로 변해가는 극 중 주인공 푸이의 인생역정을 되새겨 보면서 사람의 인생이란 게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며 격세지감과 인생허무를 느끼며 한 참을 고뇌하며(본인 말로) 걸어가던 중 뭔 가이 허전해서 보니, 앗 차!!! 소매치기다. 친구는 그렇게 자신의 주민증과 지갑을 인생 영화의 고뇌와 함께 몽땅 털려 버린 것이다.
이제는 내게 역작이라며 은근한 강요를 시전 하시던 아버지도 안 계시고...
아 털렸어 나 정말 미친다고요라고 넋두리 울화를 펼치던 내 친구 금미도 여기 없지만...
그 한 공간에서 각각의 인생 작으로 감동받은 3인의 추억스토리는 영원한 영화 맛집 대한극장의 안녕과 함께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