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 좋게도 굉장히 짧은 거리를 운전해 출퇴근을 한다.
3킬로만 운전하면 되니, 시동을 걸고 노래나 좀 들을까 하면 도착해 있는 식이다.
그리고 꽃피는 4월이 되어서 보니
그 3킬로 중 2킬로가 양쪽으로 벚꽃이 쭉 피어있는
환상적인 코스가 아닌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 벚꽃이 눈 내리듯 휘날리는 광경보다
더 멋진 풍경을 나는 몇 알지 못한다.
사실 나는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에서 10년간 살았다.
수도권으로 올라와 취직하고 결혼도 하여 여태 살고 있다.
그래서 여의도 벚꽃 축제에 처음 가봤을 때 너무나 설렜었다.
"햐 서울 벚꽃은 뭐가 다르나!"
입구에서 핫도그를 사 들고 야무지게 구경하리라,
다짐하며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런데 벚꽃이 이게 다인가.
"축제라며?!"
설마 우리 동네 뒷동산 귀염둥이 벚꽃 만한 이런 나무들을 보려고
다 모인 건가? 벚꽃보다 사람이 더 많은데??
"더 가보자!"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길은 끝나있었고
빈 핫도그 막대기만 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괜한 고향 부심을 부리려는게 아니라 그때는 정말 놀랬다.
'아.. 서울은 벚꽃이 귀한 곳이구나. 이정도면 축제구나.'
그때부터 나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을 보면
"오, 귀한 벚꽃! 있을 때 실컷 보자." 하고
한 번이라도 더 오래 눈에 담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한동안은 벚꽃만 봐도 눈물이 나는 시기가 있었다.
벚꽃이 멋있게 만개하는 이 시기.
11년 전 4월 16일.
뉴스를 보면서도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그대로 나도 같이 저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설마 구조되겠지, 전부 다 저렇게.. 설마 아니겠지', 했다.
그 아깝고도 귀한 생명들이 바다에 잠겨가는 상황을 전 국민이 지켜 봐야 했다.
울어서 부은 눈으로 출근하여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딱 고2였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우는 줄도 모르고
또다시 눈물이 줄줄 흘렀던 기억이 난다.
어떤 슬픔은 세월 속에 풍화되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이 잠겨 가라 앉아 있다가
벚꽃처럼 작은 계기에도 해일처럼 밀려온다.
일상 속 일들을 소소하게 올리던 공간에
나는 글쓰기를 멈췄었다.
슬픔을 말로 고르는 것조차 죄스러웠고,
그 슬픔 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아 쓸 수가 없었다.
오늘 산책하다가 작은 벚꽃 나무에 노란 리본이 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잠시 벚꽃 나무에 손을 대고 몸을 기울였다.
이 예쁜 계절에 차가운 곳으로 떠나간 어여쁜 아이들을 생각하며
잠시, 내 전 생애를 기울여 기도했다.
잊지 않았다.
잊을 수가 없단다.
따뜻한 곳에서 잘 지내주렴.
온 가족들이,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고 슬퍼 할테니
그곳으로는 기쁨만 가져가기를.
3킬로 중 2킬로를 벚꽃길을 만끽하며 가만히 생각한다.
이 길을 달려서 닿는 곳에 아이들이 있다.
귀한 벚꽃보다 더 귀한 아이들이 있다.
나는 내 길을 달려,
오늘도 내가 구하지 못했던 아이들과,
내가 만나는 아이들.
모두를 생각하는 어른이 되겠다.
그것이 내가 질 수 있는 책임이다.
벚꽃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참 아름답게도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