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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입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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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라 Dec 13. 2021

진상 고객들을 응원합니다

입장 정리 #6 컴플레이너





선 넘는 '무개념'들의 일화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다. 혼자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뭐 별 상관없지만 꼭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뉴스로 기사화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조금 과한 느낌은 있긴 하지만 인터넷 상으로 신상정보까지 털린다.


프로스포츠 관련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나는 팬들의 전화를 받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정당한 요구 및 불만사항은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일부 내용은 참으로 가관이다. '경기를 보다 열 받아서 티비를 부셨으니 너희가 보상해달라', '내가 모 감독보다 경기 운영을 더 잘할 것 같으니 당장 고용해달라', '경기가 취소됐는데 이미 경기장 가는 교통편을 끊어뒀으니 교통비를 보상해달라' 등등. 다 쓰고 나면 책 한 권이 완성될지도 모를 만큼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전화를 하루에 몇 통씩 받다 보니 내가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가 여자라서 스포츠 잘 모르나 본데'라는 굴욕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으니까. 민원이 주 업무인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오죽할까.


소위 말해 이 '진상'들은 상대방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정당하게 컴플레인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순간 '이런 걸 요청하면 내가 진상일까?' 싶어 이내 말을 삼키게 된다.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 지나고 보면 나만 피해 본 것 같다.






맘충과 개념맘, 그 미묘한 차이


특히나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더 그렇다. 한 아동 전시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정원 수를 실시간으로 조정하고 있었다. 한 타임이 정해져 있지는 않아 줄 서서 막연하게 기다리다가 40분 대기 끝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우리 아이 개월 수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구경하는데 흥미가 있어 형아들 체험하는 걸 보고 있었는데 10분쯤 지났을까. 입구에서 인원 관리를 하던 직원이 와서 "애가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은데 다음 사람 들어오게 나가주시겠냐"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온화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시길래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네?' 하고 되물었더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어차피 애 아무것도 모르지 않냐"라고.


당혹스러웠지만 따져 묻기 전에 혹시 이 전시 프로그램에 연령 제한이 있었나, 아니면 정해진 이용 시간이 초과되었나 순간적으로 혼란이 밀려왔다. 하지만 되짚어보아도 그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았고, 단지 우리 아이가 아무것도 못하니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양보하기 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전시를 위해 며칠 전 미리 예약을 했고 입장 대기줄까지 섰는데. 나와 아이가 오랫동안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그 직원이 몇 번이나 봤고 나에게 총 몇 명인지 인원 체크까지 했었다. 그때는 아무 말도 않다가 이제 와서 나가라니. '나는 정당하게 줄을 섰고 우리 아이도 이 놀이를 볼 권리가 있다' 하나하나 따져 묻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 얼굴이 드러나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금 더 보다가 가면 안될까요?"라고 소심하게 말해볼 뿐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당황해하는 표정의 직원. 짧은 적막이 흐른 후 옅은 한숨과 함께 뒤돌아서서 갔다. 내가 진상이었나?





*맘충: Mom + 蟲(벌레충). 아이를 앞세워 부당하게 이득을 보려는 일부 엄마들의 무개념 및 민폐 행태에 공감대를 형성한 네티즌들이 이들에 대한 혐오감을 담아 멸칭에 붙는 신조어 접미사인 충을 붙여 이들을 맘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출처: 나무 위키)





여기서 만약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더라면 나는 '진상'이고 '*맘충'일까? '맘충'이라는 용어를 인지 하고나서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는 컴플레인은커녕 아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요구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다. 방문 전 전화해서 아기를 데려갈 수 있는 곳인지, 아이도 함께 먹을 수 있게 간 조절이 가능한지, 아기의자는 있는지 등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혹여나 아이가 큰 소리를 내거나 울까 봐 노심초사다. 코로나19 덕에 외출이 자주 있지 않아 이런 상황이 잘 발생하지 않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너무 어려 마스크를 못 쓸 때는 내 얼굴만 가리고 아이 얼굴은 드러난 채로 컴플레인을 한다는 것이 너무 아이 얼굴을 팔아먹는 것 같은 언짢은 느낌이 있었다. 또 아이 이름으로 예약을 한 경우라면 상대가 아이 신상정보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또 다른 걱정을 낳기도 했다.







(짤방 패러디) 가만히 있다가 진짜 가마니가 된 배감안(여, 30세)





나는 원래도 컴플레인을 잘 못해 어떤 친구는 '가마니'라고 부른 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해 어영부영 넘어갔다가 집에 와서 후회하는 답답이. '그때 그 정도 말은 해도 됐을 텐데!' 나는 괜히 자기 아이만 과하게 보호하느라 예민하게 반응했던 엄마들 때문에 정당한 요구를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바라는 이 정도도 과한 요구일까.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보게 됐다.







내 생각이 표준일 거라는 위험한 착각


세상에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내 생각이 표준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위험하다.


일반 서비스를 넘어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들도 있지만, 정당한 요구를 하는 고객을 두고 '진상'이라며 여론몰이를 하는 악덕들도 있다. 나는 정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맞딱뜨리면 친구들에게 꼭 물어본다. "내가 이상한 거야? 진짜 객관적으로 말해줘!" 과연 이런 질문에 명쾌하고 솔직하게 답변해주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동의 또는 반대 의견을 듣고 싶다. 내가 비상식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비상식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진상 고객을 응원한다는 건, 혹시나 내가 진상이 아닐까 곱씹어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적어도 한 번 쯤은 생각을 해봤다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최소한 진상은 아닐 확률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어서다. 너무 과도한 생각 때문에 내 권리를 스스로 버리지 않기 위해서. 업주든 고객이든 각자와 서로의 역할 범위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식, 가치관 등의 범위는 지극히 주관적이겠으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건 변함이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 아닐까. 당신도 그렇듯 그 누구도 남 때문에 손해를 보는 건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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