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편지

D-Day 9.5

by Jinw

나는 글을 모른다.

글을 배운 적도 없고, 독서도 늘 내가 끌리는 장르만 골라 읽어 왔다.

그래서 글이 가진 힘을 몰랐다.

사실 지금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넘치는 마음을 풀어놓던 자리가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혼자 쓰는 일기로 옮겨 왔다는 사실. 쓰고 나면 숨이 조금 길어진다는 체감.


처음엔 글이라는 것 자체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다.
그 표현이 얼마나 많은 문학을 좁히는 말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 말 뒤에 숨었다.
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웠고, 그 부끄러움이 사실은 나를 지키려는 방어였다는 것도 늦게야 안다.

이제는 안다. 부끄러움이 사라지진 않아도,

기록은 마음을 안전하게 놓아둘 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가 예쁜 것을 찾아다니듯, 요즘 나는 내가 기댈 문장을 찾는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듯, 내가 기댈 문장을 찾고, 마음이 쏟아지는 글을 삼킨다.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호흡을 오늘의 길이만큼 남기려 한다.

매일의 일기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라 느껴지는 하루다.

혼자 영화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과도 다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감정을 온전히 내 이름으로 불러 보는 일.
그게 글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문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너에게 거절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평생 이 방식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고맙다.
아픈 감정이 한 겹 지나가고 나면 남는 감각, 글을 쓰면 약간은 해소 된다는 믿음.

언젠가는 글에 기대 잠드는 밤도 올지 모른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평생 쓸 것 같다가도,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은 쓴다. 지금의 나는 쓰고 싶다.

바람은 크지 않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나를 솔직하게 바라보는 법을 익히는 것.
그리고 내가 서툴게 적은 이 문장을 끝까지 읽어 준 당신들에게 고맙다.

내 글을 만난 모든 이가, 심심한 행복을 매일 조금씩 얻기를 바란다.

큰 행운 대신 작은 무탈함이 오래 이어지길.

가능하면 큰 행복을 좇지 말고, 소소한 행복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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