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 9
돌이켜 보면 연애가 처음도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빠르게 마음이 기울었나 싶다.
늘 나를 이끌던 사람을 만나다가, 성향이 조금 다른 너를 통해 배운 게 많았다.
다른 누가 찾아 준 카페나 전시에 끌려가던 나였다.
너는 달랐다. 너와의 약속 앞에서는 스스로 검색을 열고,
후기를 비교하고, 지도를 켜서 핀을 찍고, 동선을 짰다.
간판만 봐도 “여긴 네 취향에 맞겠다, 여긴 살짝 빗나가겠다”가 먼저 떠올랐다.
그 사소한 예측이 이상하게도 설레고 재미있었다.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다.
너와 데이트할 일은 없어졌는데도, 예쁜 찻잔이 보이면 사진을 남기고,
빛 좋은 테이블이 보이면 지도를 켠다. 누군가는 언젠가 좋아하겠지, 하고.
덕분에 얻은 변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다.
마음이 엷어지는 와중에도, 고마움은 묵직하게 바닥을 잡아 준다.
도쿄에서 네가 가고 싶다던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다음에 가면 그곳들을 천천히 돌아볼 생각이다.
너와는 함께 가지 않겠지만, “여기서라면 네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를
한 번쯤 떠올리며 의자에 앉아볼 것이다.
아쉽다. 사실은 많이 아쉽다. 그렇지만 인연이 아니면 각자 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둘이 채우지 못한 장면을 훗날 다른 누군가가 자연스레 채워 줄 날도 오겠지.
그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네 연락을 상상하는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상상은 서서히 옅어지고 있고,
나는 동시에 나를 위한 취미와 시간을 다시 나눠 잡아 본다.
결국 바람은 하나다.
연락이 오든 오지 않든, 다시 시작하든 완전히 지나가든,
나는 좀 더 나답게 지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