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 8
어제는 하루가 유난히 빨리 지나갔다.
밀린 외주를 쳐내다 보니 시간의 모서리가 금세 닳는다.
정신없이 흐르는 리듬이 지금의 나에겐 오히려 숨통을 틔워주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보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지만, 그 농도는 어제보다 한 겹 더 옅다.
스스로 다짐한다. 이래 놓고 또 술에 기대 주변을 흔들지 말자고,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러지 말자고.
출근을 하고 회의를 마치고, 별다른 사건 없이 하루를 통과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심이 되고 조금은 허전하다.
처음엔 널 완전히 잊는 데 몇 달은 걸리리라 생각했지만,
지금 속도라면 한 달쯤 뒤엔 숨이 더 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연락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대답은 여전히 다르다.
다시 보면, 나는 분명 다시 너를 좋아할 것이다.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 사실이 변수를 만든다.
외주를 마친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났고,
새로운 얼굴들이 몇 명 더해지면서 대화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풀려나갔다.
어쩌다 내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나는 길게 늘어놓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필요한 만큼의 사실을 조심스레 꺼내 놓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너를 좋아했는지 기억이 선다.
친구로 지내던 시간 동안 너는 한결같이 진지했고 결정에서는 신중했으며,
서로의 고민을 나눌 때는 성급함 대신 귀 기울임을 택하곤 했다.
배려가 깊으면서도 놀 때는 확실히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런 결들이 겹겹이 쌓이며 어느 순간 하나의 매력으로 읽혀 버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차분히 인정한다.
지나간 이야기다.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도 그랬으면 한다.
아니 어쩌면 이미 충분히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
나는 나를 위한 취미를 하나둘 더 찾아보고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씩 넓혀 보려 한다.
너는 늘 잘했지만, 나는 서툴렀으니까.
혹시 정말 우연히 네가 이 글을 읽고, ‘우리 이야기인가?’ 하고 멈춘다면, 맞다.
너 이야기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사람 보는 눈을 조금만 더 믿고, 혼자 염려를 덜어 내길.
뭐가 되었든 결국 잘 될 테니, 걱정이 앞서지 않기를.
너의 실력으로, 너의 방식대로, 끝까지 밀어붙여 보길.
서로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