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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어당 Feb 22. 2021

네팔 히말라야 ABC 여행기 #6

육일째 어퍼시누와-뱀부-도반-히말라야호텔-데우랄리

육일째 

어퍼시누와-뱀부-도반-히말라야호텔-데우랄리 거리 10km, 7시간 54분 23,015걸음


이제부터 고산이다!

  어퍼 시누와는 히말라야의 깊은 계곡 사이에 있어 햇볕이 늦게 들어선 지 아침 공기가 꽤 차갑다. 이제는 가을을 넘어 겨울 초입 날씨라서 일교차도 심하고 고도가 점점 높아지니 기온이 급속히 내려가 쌀쌀해진다. 아침으로 또 삶은 달걀 두 개와 토스트 두 쪽으로 요기를 하고 짐을 챙긴다.


어제처럼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되도록 하나하나 기억하며 짐을 챙긴다. 배낭 멘 아래는 침낭을 넣고 다음으로 다운 파카와 옷가지, 중간 뒤쪽에는 무거운 것을 채운다. 배낭은 같은 물건들로 채우더라도 무거운 물건을 등 쪽에 두면 무게중심이 내 몸과 가까워 좀 더 편안한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그리고 배낭 맨 위쪽 뚜껑에는 약간의 간식과 비상시 필요한 물건을 두면 편리하다.


  어제부터 몇 번 말을 나눈 롯지 여주인 딸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막내야 잘 있어 다녀올게!” 나이가 열아홉 살인 이 아가씨는 한국 트래커들에게 배운 한국어를 곧잘 사용한다. 막내라고 부르는 것도 한국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란다. 어제부터 나에게 막내라고 부르라며 몇 번을 이야기해서 막내라 부른다.


이제 떠나면 3일 후에 이곳 어퍼 시누와에 돌아온다. 막내가 돌아오는 길에 자기 집에서 머무르라 한다. 그러마 약속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트래커들은 모두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다. 식당은 아침 7시에서 8시 즈음에는 식사하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들로 번잡하고 분주하다. 오늘부터는 3000m 이상 고산으로 오르는 길로 대부분의 트래커들은 조금씩들 긴장한 표정이다.


  아침 일찍 기경과 상원을 찾아서 관절 진통제와 스테로이드 몇 알, 포카리스웨트 분말을 선물했다. 두 사람은 포터 겸 가이드를 고용했지만 이 포터가 무거운 짐을 지려 하지 않아서 트래커 둘이 나누어지는 바람에 매일 고생이다. 어제 말로는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기도 했단다. 지나는 길에 당나귀를 볼 때마다 동키 서비스(Donkey Service)를 부를 뻔했다며 웃는다.


 특히 후배인 기경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비상약 중 필요한 것을 골라 전해주고 복용법을 알려주었다. 일반적으로 타이레놀 등의 진통제는 무릎 등 관절이 아픈 데는 진통 효과가 없어 다른 약을 먹어야 한다. 스테로이드는 많이 쓰면 좋지 않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 때와 운동량이 많을 때는 적은 양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의의 처방이 필요하다.


이제 모두 출발하며 인사를 한다. 어제 만난 짜파게티! 지앵 일행에게 데우랄리에서 보자고 인사했더니 자기들은 천천히 걷기에 아마도 히말라야호텔에서 머물 거라며 다음을 기약한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이 길에서는 좀 더 깊은 기억의 창고에 남는다.      



깊은 계곡을 따라! 삶의 길을 따라! 기나긴 지구의 역사를 느낀다.

  오늘 트래킹 길은 하늘에 맞닿은 히말라야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계곡의 왼쪽 좁은 길을 따라 오르며 울창한 숲과 조그만 계곡들을 건너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걷다 보니 위험한 곳이 제법 있다. 어제까지의 풍경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높이가 높아질수록 기온은 차가워지고 나무들은 벌써 겨울을 채비를 마쳤다. 조금만 더 오르면 4000m 히말라야 수목한계선에 가까워진다. 좁은 계곡 사잇길을 신중히 걷다 보니 어디인지도 알 수 없고 먼저 오른 트래커들의 흔적을 찾는다.


  비박 산행 시 20kg 이상 무거운 배낭을 질 때 만 사용하던 스틱을 첫날부터 지금까지 사용하는 데 참 유용하다. 오를 때는 짧게 하여 팔에 힘을 주고 오르면 편하고 내리막에서는 길이를 조금 더 늘여 무릎에 집중되는 체중을 위 몸통으로 분산시켜 충격을 줄인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어색하지만 금세 적응한다. 길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은 깊은 계곡에서 휘돌아 치는 물소리에 가끔 공포를 느낀다.


  길을 걷다 보니 새로운 롯지를 짓는 곳이 보인다. 돌로 계단처럼 기단을 쌓고 주춧돌을 놓은 후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지붕은 푸른색 양철 슬레이트를 올렸다. 벽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바깥벽은 흙과 돌로 세우고 방과 방 사이 벽은 나무로 된 합판으로 만드는 것이 이곳 롯지의 일반적인 구조이다.


  조금 더 오르니 돌을 캐는 작은 채석장이 나온다. 이곳 히말라야의 바위는 평평하고 넓게 토스트처럼 잘려서 주로 집 짓는 재료로 사용된다. 지붕의 돌기와, 벽, 방바닥, 계단이나 밭둑 그리고 짐꾼들과 트래커들이 짐과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장소도 만들어지고 다양하게 이용된다. 한국에도 있다면 온돌의 구들장 재료 최고이겠다.


생각해보면 히말라야는 오래전 바다여서 다량의 퇴적물들이 싸이고 쌓여 이런 퇴적암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바닷속 지형이 오랜 시간 만들어졌고 지각판들이 서로 부딪혀 차츰 솟아나며 이 높고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오랜 옛날 지구의 기억들이 이렇게 켜켜이 돌이 되어 쌓여있다. 이 지구의 옛 기억들을 네팔 사람들은 꺼내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 그들의 히말라야는 곧 삶이다.



  한참을 올라 도반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역시 삶은 달걀(Life is Egg)이다. 또 같은 걸 먹는다. 이곳부터는 가만히 앉아있으면 춥다. 실내로 들어가 창가에 앉아 발을 말린다. 식사 후 출발 전 편안히 앉아 주위 트래커들과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제 반나절만 가면 데우랄리이다.


잠시 쉬며 간식으로 육포를 먹는데 가이드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이유는 시누와 위쪽부터는 힌두신의 영역으로 몇 가지 금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소고기 금지란다. 물론 난 그들의 힌두신에 대한 불경으로 소고기를 먹는 게 아니지만 미안해진다. 내 믿음이 있는 것처럼 이들의 종교를 존중하지만 먹은 게 시원찮고 식욕도 없고 해서 간식으로 조금 먹을 뿐이니 신께서도 양해 바라는 마음이다.


  걷다가 츄일레에서 만났던 일본인 여자를 다시 만났다. 이름이 마호란다. 이야기하며 걷다가 헤어지며 데우랄리에서 다시 보자 한다.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 생경해지는 풍경을 따라 작은 얼음길을 내려가야 했다. 길이 얼고 젖어 있어 모두 긴장하며 걷는다. 조금 더 오르니 이제는 넓은 계곡이 나오고 큰 물길을 따라 걷는다.


계곡의 모래가 정말 곱다. 거의 먼지 수준으로 작고 가늘다. 저 높은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오느라 이렇게 고와진 것인가? 저 무명의 세월을 지나 푸른 하늘이 생겨날 때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생겨 히말라야와 함께 솟아나 그 무엇보다 별에 가까운 커다란 바위였을 텐데 이제는 작은 모래 알갱이가 되어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겨 고향인 바다로 내려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한 줌 쥐어 본다. 그 무심한 억겁의 시간을…




데우랄리 우리 모두 나마스테!

  그리 걸어 데우랄리 롯지에 도착하니 입구에 짧은 나무 기둥 네 개가 반긴다. 나무는 간이의자처럼 생겨 거기에 편히 걸터앉아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반가운 얼굴로 올라올 때마다 나마스테를 건넨다. 모두 나마스테하여 다행이다.


이곳은 해발 3200m로 푼힐과 같은 높이지만 깊은 협곡 사이에 있어 기온이 다르다. 춥고 습해서 으슬으슬하다. 저녁을 먹기까지는 여유가 있어 고소 적응차 약간 더 올라갔다 내려오니 마침 마호가 올라오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데우랄리는 롯지에 방이 몇 개 없어 한방에 3명 이상 자야 한단다. 배정된 방은 4명이 자야 한다. 마호와 츄일레에서 인사한 찌라 등 네 명이다. 이곳은 해가 지면 추워져서 밖에 있을 수가 없다. 모두 식당에 모여 있는데 난로가 없다. 나무가 귀해 촘롱부터는 난로가 없단다.


가이드의 말로는 나무를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해 밤에는 스스로의 온기로 밤을 나야 한다. 저녁으로 또 삶은 달걀과 토스트를 주문하고 기다린다. 식당 모인 사람 모두 초췌한 모습이다. 밤이 깊어져 아주 어두워졌는데 어퍼 시누와의 일행이었던 지앵이 나타났다. 왠일이냐 물으니 히밀라야호텔에 방이 없어 무리해 올라왔단다. 이리 뜻밖에 만나니 더 반갑다.


모두 정리하고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쉬고 싶은 표정들이 역력하다 8시 넘어서니 하나둘 방으로 향한다. 나도 방에 돌아와 침낭으로 들어간다. 가져온 침낭이 한겨울용이어서 밤마다 고생이다. 너무 더워서 지퍼를 열어두고 잔다.


물론 추위는 개인차가 심하니 모두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영하의 산에서 야영하던 때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에 가깝다. 방에 찬바람이 거의 들어오지 않으니 침낭에 들어가면 바로 체온으로 견딜 수 있고 조금 지나면 더워진다.


일본인 마호가 들어온다. 이미 세 명은 침낭 안에 누웠다. 아까 마당에서 이야기하다 너를 포함한 세 명의 여자와 한방에 잔다고 하니 하렘이라며 오빠는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 놀리던 생각이 난다.


마호가 침낭을 꺼내는데 냄새가 심상치 않다. 물었더니 네팔에서 빌렸는데 따뜻하긴 하지만 고약한 냄새가 심하다며 웃는다. 그리고 이내 마스크를 꺼내 쓴다. 나도 웃으며 정말 냄새가 심하다고 농담하니 마스크를 하나 건네준다.


작은 방에 침상 네 개가 놓여있는데 세로로 세 명 눕고 발아래 가로로 한 명 자야 한다. 같은 방 다름 침상 네 명의 트래커가 각자의 꿈속으로 빠져든다.


우리는 같은 방 각자의 침낭에서 무슨 꿈을 꿀까?

왜 여기에 와서 인연이 되어 한방에 네 명이 누워 각자의 꿈을 꾸는가?

그 이유는 자신만이 알 것이다.

다소 산소가 부족한 공기와 칠흑의 어둠이 데우랄리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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