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일째 데우랄리-MBC-ABC-MBC 거리 9.9km 7시간 30분
칠일째
데우랄리-MBC-ABC-MBC 거리 9.9km 7시간 30분 21,067걸음
마지막 결전!
이른 아침부터 트래커들 모두가 분주하다.
오늘은 ABC에 도착하는 날이기에 약간의 흥분상태인 것 같다.
물론 고산병에 대한 걱정도 함께이다.
고도가 3000m를 넘어서면 공기 중 산소량이 68% 정도로 줄고 4000m가 넘으면 평지의 60%로 산소량이 적어져 대부분 사람은 고산 증상을 느끼지만, 사람에 따라 정도가 다르니 이에 적응하려고 트래커 대부분이 시누와 이후부터 샤워하지 않았으니 몰골이 조금씩들 꼬질하고 머리를 감지 않고 체온 저하를 막으려고 털모자나 비니를 써서 두상이 드러나니 모두 비슷한 얼굴 표정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은 내려간다. 왜 태양에 더 가까워지는데 기온은 내려갈까?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 답은 희박한 공기에 있다. 햇볕 중에 열을 발산하는 적외선은 산소가 많은 공기층이 단열효과를 일으켜 따뜻함을 유지하는데 고산에서는 이 산소가 희박한 상태의 공기라서 적외선의 열을 흡수하지 못해 추운 것이다.
따라서 100m 높아질 때 기온은 0.6도 내려간다. 고도차가 1000m면 6도가 낮다. 만약 해발 1000m 기온이 영상 20도라면 4000m의 기온은 영상 2도 정도가 된다. 그래서 고산으로 올라갈수록 방한 대책과 함께 고산증과 고산병에 주의해야 한다.
지금 내가 쓰고 털모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떠주신 것이다. 2003년 여름에 돌아가셨으니 아마도 2002년 겨울쯤에 스웨터와 모자 두개와 목도리 하나를 떠주셨다. 그중에 이 모자를 사용치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 트래킹에 가져왔다.
옅은 노란 미색에 손뜨게질로 뜬 투박한 내 모자는 울레리부터 날 잘 돌봐준다. 물론 어머니와 함께 걷는다는 생각에 더 따듯하다. 좀 더 올라가면 하늘에 계신 부모님과 좀 더 가까워지리란 생각이 아침을 연다.
트래커 모두들 출전준비를 한 전사들 같다. 약간의 흥분과 비장함이 감도는 데우랄리 현장이다. 역시 삶은 계란이다. 두 개의 삶은 달걀과 토스트 그리고 오늘은 비장의 무기 건조 된장국이다. 마트에서 파는 일본산 인스턴트이지만 비박산행 할 때나 캠핑할 때 사용해 맛이 익숙하고 편리해서 몇 개 가져왔다. 된장 분말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잘 저어서 토스트를 찍어 먹는다.
토스트와 된장국 다국적 만남이지만 히말라야에선 썩 잘 어울린다. 함께 있던 프랑스인들이 관심을 둔다. 그래 설명했다. 생산은 일본, 구매는 한국, 취식은 네팔이라고 모두 웃는다. 짧은 영어 때문인지 내 설명의 간결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침 식사를 하고 정리한 짐을 확인하고 출발한다.
이제 MBC를 오르고 다음은 ABC이다. 그리 멀게 느껴졌고 두렵고 막연했던 곳에 오늘 중으로 도착한다. 힘을 내야 한다. 계곡의 왼쪽을 따라 어제처럼 좁은 길을 걷는다. 물소리 바람 소리가 새롭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이 발걸음에 의미를 둔다.
별을 따라서 온 길이다. 좀 더 하늘에 가까워지고 있다. 처음으로 나선 히말라야 안나프루나 지구별 여행! 생각보다 빨리 MBC에 도착했다. 오전 11시쯤인데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이다. 햇살도 좋아서 따듯하고 저 위에 ABC가 있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난다.
먼저 도착한 기경과 상원이 라면을 먹으며 이곳 신라면이 맛있다며 강추한다. 라면을 잘 끓였단다. 주저 없이 신라면을 주문한다. 한국에서는 즐겨 하지 않는 신라면을 히말라야에서 먹는다. 맵고 기름기가 많아서 될 수 있으면 맵지 않은 안성탕면이나 진라면을 즐겨 먹는다. 좋아하는 라면을 트래킹 준비물에 챙겨왔다. 오늘 밤에는 안성탕면을 먹어야겠다.
오늘은 MBC에서 자야 하니 방을 정해야 했다. 3인실을 배정받았는데 잠시 후 마호가 올라왔다. 그래서 또 같은 방이네 하며 놀렸더니 역시 만만치 않은 마호도 웃으며 오늘도 오빠는 하렘이네 한다. 그래서 냄새나는 침낭이 때문에 별로라 하며 서로 웃었다.
신라면을 한 젓가락 했는데 실망이 크다. 나에게 역시 삶은 달걀이 필요하다. 한 그릇 비우고 12시경 모두 출발 준비를 한다.
Annapurna Base Camp에 오른다!
배낭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안나푸르나를 향해 오른다. 모두 웃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뒤쪽으로는 마차푸차레가 앞으로는 안나푸르나가 펼쳐진 길을 걷는다. 이게 꿈인가 싶다. 조금씩 올라가니 점점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 숨은 차지 않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무기력한 느낌이다.
그저 꿈에 걷듯 약간 몽롱하게 걷는다. 다른 사람들은 이내 저만치 사라지고 없다. 조금 쉬고 있자니 앞서가던 마호가 돌아와 왜 이리 천천히 걷느냐고 묻는다.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니 자기가 함께 걸어준다며 웃는다.
집채 만한 크기의 바위가 열을 지어 있는 길을 따라서 그렇게 둘이 걸었다. 오르는 길은 계곡 사이에 넓은 평원처럼 생겼다. 왼쪽으로는 평지처럼 넓고 나무 한 그루 없이 키 작은 풀들이 자라있고 오른쪽은 큰 바위들로 이루어진 높이 50여 미터쯤 되는 언덕이다.
그 사이로 길이 있어 천천히 걸으면 보통 두 시간 걸린단다. 하지만 난 거의 세 시간쯤 걸렸다. 조금씩 오르며 이것이 고소증상인가 한다. 하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다.
ABC 푯말이 세워진 곳이 보인다. 모두 거기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물론 우리도 도착해서 사진을 찍고 다시 오른다. 롯지는 더 위에 있다. 구름이 차츰 안나푸르나 사우스를 가리려 한다. 조금 빨리 올라가야 했다. 롯지를 지나 더 오르니 베이스캠프이다.
이곳에 서니 안나푸루나를 비롯한 히말라야 360도로 펼쳐진 분지이다. 높이 4130m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고 물이 풍부해 등반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사용되나 보다. 히말라야 하얀 설산들이 둘러싼 이곳은 평안과 희망 그리고 극한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이 감동은 모두 같을 것이다. 오른쪽 언덕을 오르니 벼랑이다. 그 아래는 만년설이 강이 되어 흐르는 빙하인데 처음 보니 물 없는 모래 강바닥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얼음이 보인다.
저 큰 흐름이 마차푸차레 쪽으로 거대한 얼음 강이 되어 흐른다. 주위를 둘러보니 먼저 간 산악인을 기리는 몇 개의 기념비와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린다.
나와 마주한 시간들!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와 왜 사는지? 또 죽음이 무엇인지? 등 오랜 의문이 이 신들의 땅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온 이유 중 하나이다. 중학생 무렵 처음으로 승달산을 오르고 고교생이 되어 배낭을 사고 산을 다니면서부터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곳에 올라가면 이 별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산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지리산 긴 능선을 걸으며, 또는 안개 속에서, 어느 해 여름 태풍에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서, 그리고 지리산 연하천 산장의 커다란 빨간대야 속 캔맥주를 들이키면, 산행의 고통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그랬다. 참을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 있었다.
몇 번을 혼자 지리산을 종주하며 때론 오늘처럼 산의 인연과 어느 때는 다른 나와 함께 걸으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남들과 비슷한 괘도로 진입했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 전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 열일곱 꿈의 바램이었던 여기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앞에 올곧이 서 있다.
신들의 땅에서의 기원!
커다란 바위 위에 돌 3개를 쌓고 기원을 한다.
먼저 지난 11월 5일 폐암 4기 판정받은 둘째 형님의 완치를 바래본다.
지난주 금·토·일 사흘을 누나들과 형들 모두 고향 집에 모여 함께 했다. 부모님 계시는 선산에 들려 조상님들께 인사를 올렸다. 둘째 형님의 항암치료가 결정되면 당분간 고향에 오시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큰누님 생일을 핑계 삼아 모인 우리 가족은 즐거운 분위기 만들려 노력했다. 부모님이 심어놓으신 감나무에서 감을 따 각자 몫으로 한 상자씩 포장하며 서로 웃었다. 우리 형제들에게 다시 그 아름다운 시간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안나푸르나의 신께 빌었다.
두 번째 기도는 사랑하는 아내 향과 아이들 린, 원 그리고 나를 위한 것,
마지막 기도는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평안과 행복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더니 함께 올라온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돌아보니 모두 ABC 롯지 쪽으로 내려간다. 천천히 롯지 식당으로 가서 모두에게 음료수 한 잔씩 돌렸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 왔다는 26살 청년을 다시 만났다. 휴학 후 세계 여행 중이란다. 언제 집에 가냐니 돈 떨어지고 갈 곳 없으면 돌아간단다. 패기가 좋다. 그 청년은 반드시 ABC에서 자야 한단다. 왜 모두 MBC로 가는지 모르겠다며 흥분한다.
MBC에서 자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는 어젯밤 데우랄리에서 식사를 한 후 모두 모여 이야기하던 중 고산병 위험을 조금 감소시키려면 높은 곳에 올랐다가 내려와 자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하며 내 계획을 알렸더니 많은 트래커들이 동의해 이렇게 된 것이다.
ABC의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또 다른 생각으로는 다음에 올 이유를 남기고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하나를 선택하면 거기에 집중할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리고 다른 가능성은 조금 미뤄둔다는 심정으로 포기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음료를 한 잔씩 마시니 구름이 차츰 짙어진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내려가는 길에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서 천천히 걷는다. 다시 마호가 함께 걸어준다. 저만치 사람들이 내려가고 있다. 이제껏 보지 못한 가벼운 모습으로 홀가분하게 걷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6일을 걸어 올라올 가치가 충분히 있다.
첫째로 높이가 4130m로 일반인이 트레킹하기 좋은 위치에 있고
둘째로 걸으며 느끼는 감정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자기 본연의 모습에 대해 생각할 시간적 여유와 감정적 안정감을 주며 마주하는 산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정말 새로운 세상이고 환상적이며 전율적 감동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올랐으면 내려가야 한다.
조금 내려가니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올라온다. 먼저 올라간 포터들이 롯지 방 앞에 빨간색 카고백을 내려놓는 것을 보았다. 아마 이들의 가방이리라 모두 스무명쯤 된다. 이번 트래킹에서 자주 마주쳤는데 그 중 기억에 남은 사람들이 올라온다.
노부부로 고라파니에서 츄일레로 오는 길에 처음 만났는데 부인은 무릎 때문인지 천천히 걷고 남편은 그 뒤를 더 천천히 걸으며 보조를 맞추던 부부이다. 앞선 일행들에게 불편을 줄까 걱정하며 함께 걷는 모습이 좋았다. 물론 그 일행들도 두 사람이 쉬는 장소에 나타나면 박수로 환영해주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두 사람이 올라온다. 여전히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이제 곧 목적지 안나푸르나 품에 도착할 것이다.
이들을 지나치는데 마호가 저 사람들 중에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있단다. 아마도 일본어 전공자인 듯하단다. 그중 몇 사람이 나에게 마호가 일본인 부인이냐고 묻는다. 마호와 크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안나푸르나의 인연이다. 그저 히말라야에서 만난 지구여행자일 뿐이다.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만남이 오랜 인연으로 이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첫 만남이 마지막일 때가 대부분이다. 이 별에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곧 이별을 뜻한다. 내려오며 마호와 많은 이야기 나눴다. 하지만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하나가 있다.
만남은 언제나 일기일회(一期一會)이기에 특히나 이런 고산에서 만난다는 것은 무척 특별하지만 산을 내려가면 다시 만날 수 없고 잊혀지리라. 인연의 소중함은 헤어짐에 있는 것 같다.
오늘 이곳 4130m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서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곳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품에서 찰라에 시간 속에서 흩어져 버린 나를 찾는다.
참으로 멋진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