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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Mar 13. 2024

<4> 부모도 자녀도 성적 위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 윤리

-성을 죄의식과 공포감에서 해방시켜라

-자유와 개방으로 집착을 막아라 

 

 “성은 먹고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억제하면 아주 강해지고, 만족시키면 곧바로 진정된다.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유밖에 없다.”



영국 철학자 러셀(1872~1970)은 전통적 성 윤리의 변혁을 외친 철학자다. 청교도적 금욕주의에 맞서 성의 자유를 회복해야 사랑과 행복을 살찌울 수 있다고 역설했다. 기독교 윤리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한때 대학교수 임용이 제한되는 불이익을 당했지만 평생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지금 시각에서도 다소 과격한 측면이 있지만, 구시대 성적 억압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정면으로 짚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조기 성교육, 자유연애, 음란물 개방, 여성 해방의 필요성을 학문적 영역에서 다룬 것은 단연 선구적이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성 문제를 대하는 개인과 사회의 태도에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부모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기 성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한 것이다.


러셀은 저서 ‘결혼과 도덕’에서 성적 억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서두에 인용한 것처럼 성은 음식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므로 막무가내로 억압할 것이 아니라 가급적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만족시켜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렇게 해야 과도한 집착과 그에 따른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러셀은 성에 대한 무지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어린 자녀들에게 성에 관한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만족시켜 줄 것을 주문했다. 아무리 어려도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숨기거나 대충 둘러대는 말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훗날 교사나 친구한테 진실을 전해 듣고 부모가 자신을 속인 것으로 드러날 경우 성이 불결하거나 비도덕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란다.

성에 대한 비밀주의나 왜곡은 성장기 사랑과 행복을 찾는데 결정적으로 걸림돌이 된다는 게 러셀의 판단이다. 부모가 성에 관계되는 문제에 거짓말을 할 경우 아이들은 자기들도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부모에 대한 불신은 이후 모든 성 지식을 또래 친구들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데 왜곡되고 부정확할 가능성이 있다. 


러셀은 성적 호기심은 다른 종류의 호기심과 마찬가지로 충족되면 반드시 소멸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집착을 막기 위해서는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게 좋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다른 화제를 취급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로 성을 취급하고, 아이들의 어떠한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해 주고, 또 아이들이 이해할 만큼 충분한 지식을 제공해 주면 쓸데없는 상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러셀은 아이들이 음란해지는 것은 어른들이 괜히 점잔을 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것은 위선에 다름 아니며, 아이들도 그것을 따라 하게 된단다. 이런 것이 지속되면 아이들이 부정직해질 뿐만 아니라 과학적 호기심마저 잃게 된다고 지적한다. 


“세상의 온갖 지식을 추구하는 아이가 어떤 문제에서는 자신의 욕구가 나쁘다는 것을 알 때 그의 과학적 호기심의 충동은 모두 제한된다. 아기를 어떻게 낳게 되느냐고 묻는 것이 나쁘다고 하면 아이들의 머리에는 어떻게 해서 비행기가 만들어지는지 묻는 것도 똑같이 나쁘다고 인식하게 된다.”


러셀은 거기다 아이들이 짓궂게 성적 장난을 하거나 음란한 행동을 하는데 대해 부모가 지나치게 꾸짖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유년기나 청소년기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행위여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도 부모가 과하게 반응함으로써 괜히 죄의식과 공포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성을 죄나 공포와 결부시키는 것은 성인기 이후 정신 건강에 당연히 해악이 된다.


“죄의식과 수치심, 공포감이 아이들의 생활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충동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사실을 탐구하는데 주눅이 들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행복하고 명랑하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러셀의 이런 인식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성욕이론(psychosexual theory)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ego)는 본능적 쾌락 욕구에 해당하는 성충동(libido)과 사회적 규범인 초자아(superego)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 성적 엄숙주의가 강하게 지배할 경우 초자아가 지나치게 성충동을 억제하기 때문에 자아가 죄의식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런 자아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존감, 자부심을 갖는데 한계가 생긴다.


서양 선진국에선 성 문제에 대체로 개방적이다. 이는 성이 사회 윤리와 직접 관련짓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성충동은 인간의 윤리도덕과 무관하며, 개인의 생명과 인격의 영역임을 가르치고 있다. 성생활에 자유를 제공하는 것은 그 때문이며, 대신 성범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하게 처벌한다. 


러셀도 성적 욕망이 지나치게 크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건전한 자아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 욕망은 음식과 마찬가지여서 그것을 금지하면 더 강해진다고 보았다. 게임 활동이나 알코올 소비를 줄이려면 그것을 금지하기보다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게 더 낫다는 논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러셀은 성에 대한 집착을 줄이는데 자유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전통적 도덕주의자들은 만약 성충동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천박하고 거친 인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본능은 억제하기보다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제 하에 성도 자유를 보장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어린 시절에 본능을 훈련시키지 않고 억제할 경우 그 후 평생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러셀은 성적 충동에 대한 일정 수준의 절제와 자제가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제의 효용은 기차 브레이크의 그것과 비슷하다. 기차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당연히 유용하다. 그러나 정상적인 방향을 가고 있을 때는 해롭고 불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성적 자제는 때로는 필요하지만 대부분 불필요하다고 러셀은 생각했다.


절제와 자제의 수준을 러셀은 음식물 섭취와 비교해서 설명한다. 음식물을 섭취할 때 우리는 세 가지 제약 즉, 법률의 제약(훔쳐서 먹는 것) 예절의 제약(남보다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 건강의 제약(병에 걸리도록 부적절하게 먹는 것)을 받는다. 성에 있어서도 도둑질과 흡사한 강간을 해서는 안 되며, 정신적 사랑이 전혀 없는 상태에선 성관계를 삼가야 하며, 성병에 걸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성 윤리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미신에 사로잡히지 않고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성 문제에도 비즈니스, 스포츠, 과학연구 등 다른 인간 활동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윤리가 필요하지만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주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터부에 휩싸여 어린 시절을 보낼 경우 나이 들어 너그러운 사랑을 경험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러셀은 음란물의 범람을 막으려면 규제하는 것보다 개방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어떤 측면에선 맞고 어떤 측면에선 틀린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의 법적 규제도 양면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음란 출판물에 관한 일체의 법률적 규제는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러셀의 논리는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음란물은 일시적으로 색정을 자극하겠지만 완전히 개방해 버리면 얼마 안 가서 자극이 반감되고 무관심해진다고 보았다. 노골적이며 선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만약 공개되어 있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면 남몰래 숨어서 그것을 즐기는 것보다 덜 유해하다는 주장이다. 러셀은 19세기 영국 남성들에게는 여성의 발목이 충분한 자극이 되었지만 20세기엔 넓적다리까지 보아도 별다른 자극이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성에 자유와 개방을 부여해야 한다는 러셀의 주장은 21세기 젊은 부모나 교육자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지금도 성을 은밀한 것이라 여기며 좁고 어두운 곳으로 감추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조기 성교육이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보수적인 부모들은 ‘쉬쉬’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셀은 생활 밀착형 철학자다. 그의 저서에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사례가 구체적이며 솔직하게 등장한다. 성에 관한 각종 글이 특히 그렇다. 철학자는 성에 관한 한 위선이 금물이라는 점을 거듭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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