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읽기>
“만약 역사를 즐기지 않는다면 역사의 모든 효용은 무의미하다. 의무감 때문에, 또는 교양을 쌓기 위해 마지못해 역사를 공부한다면 그것이 제공하는 것들을 제대로 얻지 못한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경험만 믿는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한 말이다. 공부 중에, 혹은 독서 중에 역사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경제나 과학, 예술, 문학도 중요하지만 역사만큼은 아니라고 나는 감히 주장한다.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 그들이 경험한 성공과 실패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참된 지혜를 무궁무진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동서양 할 것 없이 학교에서 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식견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역사 읽기를 애써 권장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역사 속 훌륭한 인물들의 삶, 즉 그들의 선택과 결과를 제대로 익힐 경우 자기 인생의 답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 공부는 쉽지 않다. 중요한 줄 알면서도 거리를 두는 이유다. “’역사에서 배운다’라는 말은 멋지긴 하지만 정작 배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조정래가 소설 ‘정글만리’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 역사 애호가가 더러 있긴 하지만 다수는 외면하는 게 사실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학창 시절 국사나 세계사를 배울 때 누구나 학습량이 많아 어려움을 겪는다. 다들 인명이나 지명, 사건, 연도를 외우느라 진저리 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딱딱하다 보니 지치기 십상이다. 역사가 암기 과목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이런 기억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역사는 별 인기가 없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러셀은 1943년에 출간한 책 ‘역사를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에서 역사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중고교 과정에서는 상급학교 입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암기식 공부에 치중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질려버린다. 대학에 진학하면 두 가지 방향으로 수업이 이뤄진다. 하나는 개론 수준의 강의여서 학점 이수에 필요한 만큼만 배우는데, 중고교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다. 또 하나는 평생 역사를 전공하고 가르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강의인데, 비 전공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철학이나 수학 못지않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러셀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쾌락으로서의 역사 읽기’를 주창했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은 그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역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지 않으면 시간 낭비일 뿐 유익하지 않다고 설파한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예로 들었다. 셰익스피어는 기쁨을 주기 위해 글을 썼다. 따라서 시에 감각이 있는 학생이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학생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어떤 학생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읽기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 러셀은 후자의 경우를 “셰익스피어에 대한 모독이며 학생 인격에 대한 무례”라고 규정했다.
역사는 호기심을 유발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 독일 역사학자 테오도르 몸젠은 “상상력은 시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접하면서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펴야 하는데, 읽는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상상력이 생길 리가 없다.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러셀은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하기 때문에 재미를 만끽하며 역사를 읽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일반적인 역사책, 학습용 책은 딱딱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역사에서 시대 흐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정 인물에 대해 디테일 한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더없이 흥미롭다는 뜻이다.
사실 전기나 회고록 읽기는 독서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독서가들이 많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주인공의 생각과 언행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내면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에 재미를 더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인공의 삶을 추적하다 보면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러셀의 책에서 그가 파악한 걸출한 인물들의 실체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선 그는 스피노자와 링컨의 경우 공부하면 할수록 더 위대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나폴레옹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임을 알게 된다고 했다.
러셀에 따르면, 언젠가 나폴레옹은 외무장관 탈레랑에게 절름발이라고 조롱하며 부정한 아내를 두었다고 비웃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지리를 뜨자 탈레랑은 “저토록 위대한 사람이 저렇게 예의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다”라고 탄식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보면 허장성세임을 알게 된다고 했다. 러셀은 역사가들이 나폴레옹의 이런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신화와 전설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러셀에 따르면, 또 괴테와 베토벤의 사이가 꽤 좋았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단다. 베토벤이 괴테가 고위 공직을 맡고 있던 바이마르를 방문했을 때 괴테는 궁중 예절을 가르치려 했고 이에 베토벤은 화가 나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다고 한다.
러셀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황태자 시절 가정교사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역사적 왜곡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스승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 심하게 미워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는 모두 가짜란다.
러셀은 역사를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위대한 인물의 언행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거시적 발전과정에 비중을 두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역사를 읽는 최고의 쾌락은 특정한 시대를 정확히 알고 난 다음에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조각 그림 맞추기 퍼즐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러셀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역사 읽기에서 인물 독서는 더없이 재미있다. 오래전, 멀리 다른 곳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그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역사적 인물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독자인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상상해 보는 즐거움은 자못 크다.
예를 들어, 정도전의 전기나 평전을 읽는다고 치자. 물론 조선 건국 초기의 시대 상황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어야겠다. 그는 왜 존경하는 선배 정몽주와 함께 하지 못했을까? 왜 그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방원을 경계했을까? 피살되는 날 밤 마음만 먹었다면 몸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처칠의 자서전을 읽는다고 하자. 그토록 명석한 사람이 삼수를 하고서야 겨우 육사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수학을 못한 이유는 과연 뭘까? 초급 장교 시절 부모 인맥을 동원하면서까지 전쟁터를 찾아다녔다는데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아프리카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 탈출하는 순간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평생 운동은 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술과 담배를 즐겼음에도 90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역사 인물 독서는 곧잘 새끼치기를 한다. 어떤 인물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꼈다면 관련된 인물에 대한 책을 읽고 싶어진다. 정도전이 재미있었다면 이성계나 이방원, 김종서에 관심이 생긴다. 처칠이 재미있었다면 히틀러나 아이젠하워, 몽고메리에게도 흥미를 느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역사 읽기의 폭과 깊이가 한층 더해진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 상황이 자연스럽게 파악되는 것은 물론이다.
일찍이 러셀은 이런 역사 읽기를 주창한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흥미를 갖고 가슴으로 대화할 경우 각자 인생의 소중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은 바른 길을 안내받을 수 있다. 이런 자세로 읽으면 역사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영화나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멋진 스토리가 될 수 있다.
러셀은 거듭 말했다. “역사는 최소한의 분량이라도 가능한 유쾌하고 즐겁게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