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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Jul 17. 2024

<22> 노동이 인생의 목표일순 없다

<게으름>

-하루 4시간만 일해도 된다

-슬기로운 게으름은 나쁘지 않다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행복과 번영에 이르려면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나가야 한다.”


나는 어릴 때 “부지런해야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다. ‘근면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지금도 머릿속 깊이 박혀있다. 방학 숙제 표어 글귀로 자주 써먹었기 때문이리라. 중고등학교 시절 온몸으로 경험했던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 첫머리도 근면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사람에게 근면은 더없이 중요한 덕목이다. 게으른 사람이 큰 성취를 이룰 가능성은 언제나 희박하다. 동서고금 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근면을 강조한 이유라고 해야겠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금언은 언제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게으른 사람은 악마의 고용인이다. 그의 옷은 누더기이고, 그의 음식은 굶주림이며, 그의 월급은 질병이다.” “게으름은 강철을 부식시키는 녹과 같아서 노동이 신체를 피곤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우리 인생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아무렴 게으름이 부지런함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웬걸,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을 옹호하고 나섰다. 서두에 소개한 문장은 그가 1935년 출간한 책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나오는 대목이다.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은 사회를 위해서도, 개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는 산업사회 이전에나 어울리는 말이란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놀 권리’를 향유할 여건이 된다고 주장한다.


러셀은 근면을 칭송하는 문화는 노예국가의 도덕이라고 했다. 노동이 인생의 목표일 순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노동이 인생의 목표라면 사람들이 그것을 즐겨야 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틈만 나면 피하려고 한다. 만약 노동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합당한 여가가 보장되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노동을 찬양하는 사람은 남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밖에 없다는 게 러셀의 생각이다.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은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러셀은 결국 행복이란 노동하는 중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게으름 피우며 여가를 즐기는 가운데서 나온다고 했다. 누구나 게으를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고, 장난치고 싶어지고, 스스로 선택한 건설적이고도 만족스러운 활동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단다. 러셀은 이를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도시 노동자들의 긴 근로시간을 비판하며 ‘하루 4시간 근로’라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당시 근로시간이 적게는 12시간, 많게는 15시간이었음을 감안하면 위정자나 기업인들에게 ‘정신 나간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게으름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하루 4시간 근로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의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보장되고 실업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생각은 부자들에게는 충격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여가가 주어지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 모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급진적 주장이긴 해도 우리 시대 대한민국의 근로 현장을 보면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토요 휴무제 도입 당시 가진 자, 경영자 집단의 반대 목소리는 엄청나게 컸다. 생산성이 떨어져 기업이 힘들어지면 고용이 줄어들어 실업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후 주 52시간제 도입 때도 그랬지만 별 문제없이 정착되고 있다. 덕분에 근로자들은 유사 이래 가장 많은 휴가를 즐기고 있다. 언젠가 주 4일제나 주 3일제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이란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도 아니고, 대책 없이 일하기 싫어하는 나태함도 아니다. 생산성을 염두에 둔 여가와 사색을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게으름을 찬양하는 이유는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세상이라야 행복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세상의 강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여가 시간에 자기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행복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고, 어떤 수준의 화가든 밥 걱정 하지 않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의료인은 틈틈이 첨단 의술을 익힐 수 있고, 교사는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여가가 보장될 경우 신경쇠약과 피로, 소화불량 대신에 삶의 환희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으름을 찬양한 사람은 러셀 말고도 더러 있다. 인생에서 여가나 여유를 생각하면 게으름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에 평화를 안겨주고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게으름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철학자 칼 카펙은 게으름을 ‘정신 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고 규정했고, 또 다른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라고 정의했다. 두 사람은 행복에 게으름은 필수라고 했다.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이런 것 좀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일이 지나치게 많아도, 권태가 너무 심해도 행복을 빼앗긴다. 하지만 게으름은 아무리 많아도 나쁘지 않다. 일상에서 자유가 마음껏 보장되기 때문이다. 로마 시인 키케로는 말했다.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란 언젠가 한 번쯤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수 있는 사람이다.”

 

봄날 오후 반려견 데리고 뒷산에 올라 잔디를 벗 삼아 따스한 햇볕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 그늘 좋은 큰 나무 밑에 누워 긴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점심시간도 잊은 채 수다 떨 수 있는 사람….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숭배할 필요가 없는 게으름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평화이고 자유 아닐까? 슬기로운 게으름이라면 나쁘지 않다.


꼭 게으름이 아니라도 좋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가급적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하다. 시간 구애받지 않고 제주도 올레길을 완주하는 사람, 제대로 읽지 못한 그리스로마신화나 삼국지, 토지 같은 대작을 완독하는 사람, 좋아하는 당구 실력 향상을 위해 매일 당구장을 찾는 사람… 본인이 원하는 것이고, 일정한 성취가 보장되기에 행복은 더 클 것이다.

 

러셀은 여가가 많이 주어지면 사회의 문명이 발달하고 개인의 심성이 좋아진다고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문명을 발전시킨 사람은 주로 유한계층이라고 했다. 먹고 노는 사람들이 과학적 발견을 하고 예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삶에 여유가 있어야 상상력과 창의성이 풍부해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철학을 탄생시키고, 사회적 관계를 세련되게 만든 것도 유한계층의 업적이라고 했다. 러셀은 단언했다. “만약 유한계층이 없었다면 인류는 결코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여가는 철학의 어머니”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자연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미국 시인 랠프 에머슨은 여가를 다이아몬드 원석이라고 불렀다. “여가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여가 시간은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어서 그 가치를 아무도 알 수 없다. 잘 다듬으면 일상에서 가장 빛나는 귀한 보석이 될 것이다.”


여가가 개인의 심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러셀의 발상은 흥미롭다. 누구나 여가를 통해 행복을 누리게 되면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히게 되고, 남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일이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도덕적 자질이다. 이는 힘들게 싸우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함에서 나온다.” 역시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세상에 더없이 유용한 여가 시간을 많이 확보하려면 일과 여가를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일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놀 때는 누구보다 재미있게 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공부 잘하거나 일 잘하는 사람은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것처럼 어정쩡하게 세월을 보내는 사람에겐 여유가 있을 리 없다. 맨날 시간 없다고 투덜댄다. 일하는 시간도 부족하고 노는 시간도 부족한 사람이다. 게으름을 극도로 혐오했던 프랭클린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여가를 얻고 싶다면 일하는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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