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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쓰기 재능을 칭찬해준
국어 교사

-수학, 라틴어 등 기초과목 부진으로 연속 낙제한 앙드레 지드

by 물처럼

*앙드레 지드(1869~1951)= 프랑스의 소설가, 평론가. 194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좁은 문’ ‘전원 교향악’ 등이 대표작.



소년은 무척 불우했다. 11세 때 법학 교수인 아버지가 사망하고, 홀로 된 어머니는 엄격한 칼뱅주의자여서 아이에게 도덕적, 종교적 순종을 요구했다. 따뜻한 사랑은 없고 간섭과 감시만 있는 가정이 아이를 우울하게 했다. 학교생활은 훨씬 더 힘들었다. 성적이 형편없어 학년이 바뀔 때마다 진급을 걱정해야 했다.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57세 때 쓴 자서전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권은미 옮김, 나남, 2010)에 보면, 그는 교과 성적이 형편없는 최하위권 학생이었다. 무엇보다 기초과목인 수학과 라틴어에서 반복적으로 낙제하는 바람에 교사들에게 ‘무능하다’ ‘게으르다’라는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나는 늘 꼴찌였고, 공부에 매달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진급조차 위태로웠고, 늘 시험에서 굴욕을 맛보았다.”


성적이 나쁜 데다 성격이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예민해서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나는 내 또래들과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동급생들에게 조롱의 대상이었다.” 왕따 비슷한 고립을 심하게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나쁜 습관 때문에 퇴학을 당하기도 했으며, 3개월 뒤 학교로 돌아왔지만 홍역으로 장기간 쉬어야 했다. 심지어 꾀병으로 3주 동안 결석하기도 했다.


교사와 친구들에게 ‘쓸모없는 아이’로 인식되었으니 희망이나 자존감, 자신감이 있었을 리 없다. 신경쇠약에 걸리고, 우울 증세를 보일 만도 하다. 아마 어머니도 포기하다시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국어(프랑스어) 교사의 단 한 마디 칭찬은 그를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과제물로 써낸 짧은 에세이에서 남들과 다른 독특한 감수성을 읽어내고 칭찬해 준 것이다.


“학업 성적은 늘 뒤떨어지지만 너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어. 문장은 특별히 섬세하고, 글 속에서 이미 작가의 자질이 보이는구나.”


태어나서 처음 듣는 칭찬이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는 평생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나를 무능이 아닌 가능성으로 봐준 순간이었다. 나 자신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라 남과 다른 방식으로 유용한 아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지드는 비록 학교에서 실패자로 평가받지만 글쓰기에서만큼은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과 자신감을 얻었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우쭐대는 바람에 따돌림이 더 커졌지만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 수업 과제 가운데 글쓰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일기와 편지 쓰기에 힘썼다. 그리고 다방면적인 독서에 매진했다. 그 결과 학교 성적은 여전히 부진했지만 문학도로서 발걸음을 서서히 내디딜 수 있었다.


악몽 같은 학교 생활은 그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이며, 19세 무렵 소설 창작을 시작한다. 그 결과 22세 때인 1891년 자전적 소설 ‘앙드레 발테르의 수기’를 발표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어린 시절 학업 부진과 사회적 고립은 작가의 내면적 성찰과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작품에서 독창적인 문체와 심리 묘사로 현대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식민지 문제, 동성애, 종교적 위선 등 껄끄러운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며 인간 내면의 진실을 탐구하고자 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에 잘 드러나 있다.


“광활한 예술적, 윤리적 탐구를 통해 현대문학과 사상에 심오한 영향을 끼친 그의 두려움 없는 사랑과 진실성을 높이 평가한다.”


학창 시절 외톨이 낙제생이던 지드에게 국어 교사마저 칭찬 한 마디 해주지 않았다면 사회 낙오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위대한 소설가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칭찬의 유용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무능력으로 자신감을 잃고 좌절의 늪에 빠진 사람에게 칭찬은 어둠 속 등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지드는 자서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선생님의 그 칭찬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끝내 스스로를 무가치한 아이로 믿고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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