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 머리 나쁜 아이로 낙인찍힌 열등생 월터 스콧
*월터 스콧(1771~1832)= 스코틀랜드 태생의 영국 소설가, 시인, 역사가. 대표작으로 ‘아이반호’ ‘호수의 여인’ 등이 있다.
역사 소설 ‘아이반호’의 저자 월터 스콧은 스코틀랜드의 영웅이다. 현재 스코틀랜드 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의 핵심 모델이며, 수도 에든버러 시내 한 복판에 그의 기념탑과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다. 스코틀랜드 인들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어릴 적엔 학업 열등생의 대명사였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의사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늘 뒤처졌다. 친구들한테 멍청이, 머리 나쁜 아이라 놀림 당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같은 고전 과목을 못해 교사들에게도 “재능 없는 아이’란 소릴 들어야 했다. 라틴어 구절을 외워 발표하는 시험 때 머뭇거리다가 틀려서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숙제를 잘 해오지 않아 고깔모자를 쓰고 교실 뒤 구석에 혼자 서 있는 벌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낙제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훗날 그는 이런 회고를 남겼다. ”나는 교실에서 늘 뒤처졌고, 선생님 앞에 나가면 창피를 당하곤 했다.” “공부 경쟁에서 패배자였다. 시험 때마다 공포를 느꼈다.” “나는 절반만 학교에 다닌, 거의 방치된 아이였다.”
스콧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성장을 멈추는 바람에 제대로 걷질 못했다. 공부를 잘 못하는 데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수도 없으니 심한 자격지심과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정규 교과목엔 흥미가 없었지만 전설과 민담, 민요 등 대중적인 스토리를 좋아했다.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민담과 민요를 달달 외워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걸 좋아했는데, 친구들은 “쓸데없는 데 정신 파는 아이”이라고 놀리기 일쑤였다.
이런 아이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자그마한 사건이 일어났다. 15세 때 그는 친척 어른을 따라 사교 모임을 겸한 어느 문학살롱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당시 명성이 높았던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즈를 만난 것이다. 번즈는 존 랭혼의 시집을 보고 있었는데, 그 안에 적힌 작은 시구를 가리키며 그 출처와 의미를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지만 어린 스콧이 나서서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번즈는 감탄한 나머지 공개적으로 칭찬을 했다. “젊은 친구, 네가 맞았어. 고맙네.”
시인의 칭찬 한 마디는 열등생 외톨이 소년에게 엄청난 격려가 되었다. 학교에서 늘 열등생 취급만 받던 아이에게 “나도 쓸모 있는 존재구나”라는 자존감,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또 막연히 문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 말이 결심의 불씨가 되었다. 그는 이런 회고를 남겼다.
이후 스콧은 독서와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독서와 기억력, 문학적 지식에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스코틀랜드 역사와 고대 연대기, 기사도 문학을 의욕적으로 공부하는가 하면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익혀 괴테와 실러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대학에선 법학을 전공했지만 역사, 문학, 민속 연구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위대한 작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는 역사소설을 창시했다.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과 허구적인 인물을 결합한 문학 장르를 새롭게 개척했다. 소설을 통해 역사와 사회를 해석하는 시도를 처음으로 한 것이다. 푸시킨, 발자크, 톨스토이, 디킨스 같은 후세 거장들이 이 방식을 따르고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또 문학을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랑과 모험, 서스펜스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도입한 덕분이다.
스콧에게 어느 시인의 칭찬이 없었다면 어떤 삶이 전개되었을까?
자신감 결여로 고달픈 인생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누군가의 우연한 칭찬은 자기 잠재력을 새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단련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누구나 자신감만 장착하면 그다음은 혼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