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히도 공부를 못해 어머니도 포기한 아이, 다니엘 페낙
*다니엘 페낙(1944~ )= 모로코 태생의 작가. ‘말로센 시리즈’는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프랑스에서만 600만 부가 팔림.
소년은 훗날 프랑스에서 유명 작가로 성공했지만, 학창 시절 지독히도 공부를 못했다. 유년 시절부터 그랬다. 6세 무렵 알파벳을 외울 때 a 한 글자를 익히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한다. 4형제 중 형들은 다 총명한데 막내 혼자 아둔했다. 학교 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자전적 에세이 ‘학교의 슬픔’(윤정임 옮김, 문학동네, 2014)에서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어렸을 때, 나는 날마다 학교에서 들볶이다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내 공책에는 선생님들의 꾸지람이 적혀 있었다. 반에서 꼴찌가 아닐 때는 꼴찌 바로 앞이었다. 처음엔 계산, 그다음엔 수학에서 막혔고, 심각한 철자 습득 장애에다, 역사의 연대 암기와 지리의 장소 파악에도 먹통이었고, 외국어 습득 불능에다 (수업은 듣지 않고 숙제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라는 명성이 자자했으며, 음악이나 체육 혹은 그 외 어떤 과목으로도 벌충하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부모의 걱정이 얼마나 컸겠는가? 본인도 암담했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그는 맨날 꾸중하던 국어 교사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선물을 하기로 작정하고, 집에 있던 금고를 터는 비행을 저지르고 만다.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벌로 규율이 엄한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아이는 부모에게 기숙학교에서 빼내 북아프리카 오지의 군인자녀 학교로 보내달라고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숙학교 생활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계속된다. 그 무렵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장래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이웃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단다. “우리가 죽고 나면 동생의 뒤를 돌봐주겠다고 형들이 약속했기에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a를 익히지 못할 때 그는 자기 걱정을 털어버리려는 듯 “애야, 걱정할 것 없어. 어쨌거나 26년 뒤면 알파벳을 완벽하게 알게 되겠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 때문에 재수할 때도 아버지는 장난처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걱정하지 마라. 바칼로레아도 결국은 자율운동신경 같은 걸로 정복할 수 있을 거야.”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심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무시하거나 비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결국 가능하다는 무언의 믿음, 기다려주겠다는 사랑의 격려가 담긴 말이라 여겨진다. 아버지는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누구보다 아들의 곁을 지켰다. ‘학교의 슬픔’에 이런 내용이 있다.
페낙 스스로에게 유난히 불만스럽고 불행하게 느껴진 때가 있었다.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고 소망했던 시절, 그는 방에서 알프스 남단의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그 암벽은 실연당한 연인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자살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며 그곳을 노려보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버지는 문틈으로 고개만 살짝 들이밀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 다니엘, 내가 깜빡 잊고 말 안 했는데, 자살은 경솔한 짓이란다.”
아버지의 애정 어린 기다림 덕분일까. 페낙은 기숙사 생활을 하던 중학교 4학년 때, 국어 교사의 도움으로 읽기와 쓰기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다. 국어 교사는 수업에 무관심한 데다 숙제조차 하지 않는 아이의 내면에서 이야기꾼 기질을 발견하고는 소설 쓰기 과제를 내주었다. “매주 한 장(章)씩 써서 한 학기 동안 소설 한 편을 써내도록 해. 대신 논술을 면제해 주지. 주제는 자유지만, 틀린 글자가 있으면 안 돼.”
페낙은 사전을 끌어안고 신문에 연재하는 전업작가처럼 열정적으로 소설을 써 매주 갖다 냈다. 이 무렵 그는 독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자기도 모르는 새 책을 가까이한 것이다. 자신을 알아준 국어 교사와 독서에 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소설은 그에게 가장 매력적인 책이었다. 역시 ‘학교의 슬픔’에 나오는 그의 회고다.
“그때의 독서는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시간 낭비이자 학업을 망치는 일로 평판이 난 소설 읽기는 수업 시간에 금지되었다. 책을 몰래 숨어서 읽는 내 취향은 거기서 비롯했다. 소설책을 교과서로 씌워 읽고, 되도록 모든 곳에 책을 숨겨두고 읽고, 야밤에 손전등을 켜고 읽고, 체육 시간을 면제받아 읽고, 혼자서 책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좋았다.”
독서 습관은 아버지한테 터득한 건지도 모른다. 파이프를 물고 안락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가르마를 무심히 쓰다듬는 아버지의 모습이 무척 멋지게 보였단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언제나 지속되는 행복 속에 신체적으로 정착했다.”
독서는 열등생이자 낙오자였던 페낙에게 삶의 희망, 무언가를 하려는 욕구,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겨줬다.
그는 문학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읽고 쓰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결국 훌륭한 교사가 되고, 세상이 인정하는 작가로 출세했다.
“나의 깨달음은 짐짓 거리를 둔 척하셨던 아버지의 집요함 덕분이기도 하다. 나의 낙담에도 절대 낙담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내 모든 도피 행각에 저항할 줄 알았다.”
“나에게는 어른이 되어서도 열등감이 여전히 의심(doubt)으로 남아있지만 아버지의 태도 덕분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나는 내 의심들을 마스터(master)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