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좋아해
6개월의 인턴 기간이 끝을 보이자 회사 선배님이 물어보셨다.
“앞으로 뭘 하고 싶어요?”
오 어쩌면 내가 회피하고 있었던 이야기. 마땅히 지어낼 말도 없어 사실대로 “이제 찬찬히 생각해보려구요~!”하고 말았다.
그 말을 내뱉으면서도 혹시나 계획도 꿈도 생각도 없이 사는 미련한 애처럼 보이지 않을지 괜한 걱정에,
순진무구한 발랄함을 한 방울 섞은 표정과 말투로 상황을 무마하려 애썼더랬다.
나름 생각해보려 애썼는데 답이 없었다는 슬픈 엔딩보단, 생각조차 안 해본 꽃밭 스타일이 낫지 않을까? 하고.
2022년이라는 꽤나 생소한 숫자의 한 해가 시작되고, 어딘가의 소속을 잃어버린 나는 자연스럽게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게 되었다. 여전히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른 채 말이다.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 시간은 자꾸만 구직 사이트와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 머물렀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털어놓는 보편적인 고민들에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알량한 우월감에도 젖었다. 남과 비교하며 위안을 얻은 스스로가 옹졸하게도, 안쓰럽게도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곤 또다시 공고 속 지원 자격에 비해 보잘것없는 내 스펙에 괴로워했고, 남들 다 있는 토익 점수를 만들며 딱 이력서 한 칸짜리 든든함을 얻었음에 행복해하기도 했다.
기업에 지원하기 위해 자소서(설)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단은 재거나 따지지 말고 어디에든 많은 서류를 넣어보려던 내 목표는 완벽히 실패했다.
일명 ‘만능 자소서’가 없던 나는 써보고 싶은 공고가 생기면 최소 3일에서 일주일 가량을 붙잡고 괴로워했다.
고민하는 사이 공고가 마감되기도 하고, 빠르게 쓰지 못하다 보니 ‘이제 보니 하는 일이 별로인 듯..ㅎ’ 하는 여우의 신포도 같은 생각들에 쉽게 무너졌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완성시킨 국립극장의 자소서는 보기 좋게 서류 단계에서 탈락했다. 이때는 일단 제출했단 것만으로도 왠지 다 된 것 같았기 때문에, 합격자 명단에 모르는 이름들만 있자 믿을 수 없었다. 날 보고 싶지도 않다니.
열심히 포트폴리오까지 만들며 지원한 한 회사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확인하였으나 아쉽게도 좋은 결과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렇게 내 마음속 불매 리스트는 늘어만 갔다.)
이것저것 무언갈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남은 건 없기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점이 가장 슬펐다.
면접 한 번 보지 못한 채 날씨는 점점 따뜻해져 갔다.
내 모교는 졸업생에게도 몇 년간 진로/취업 컨설팅을 지원해준다. 취준생의 불안함을 이용하는 유료 서비스들이 판치는 가운데 참으로 고마울 수가 없다.
한 달에 두 번뿐인 이 기회를 어떻게든 알뜰히 쓰고 싶어서 나는 광탈한 국립극장 자소서 파일을 첨부해 컨설팅에 신청했다.
과연 어떤 피드백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한 당일, 상담사분은 나한테 물었다. 여전히 공연 쪽(만)을 희망하는 거니?
꼭 그렇지만은 않고 산업군을 넓게 잡고 써보려 한다는 내 답을 듣곤 그러면 자기가 해줄 말이 많아진다며 잘됐다고 했다.
그는 자소서에 대한 피드백은 차치한 채 ‘취준생’ 나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들을 쭈르륵 이어갔다. 그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지원직무를 홍보/마케팅으로 좁혀놓지 말고 경영지원 직무들도 생각해. 지원 폭을 넓혀야 쓸 데가 많아지지. 근데 경험 쌓을 시간은 없으니까 책이랑 교육 같은 걸로 가성비 있게 접근해. (물론 이렇게 반말로 말하진 않았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원 직무를 지금보다 넓게 설정하면 더 많은 공고에 지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상담은 내 뒤통수를 세게, 아주 세게 ‘후리고’ 지나갔다.
내가 왜 ‘가성비 있게’ 인사 혹은 총무에 대한 지식을 쌓아서 ‘이 직무에 관심 있었던 척’을 하면서까지 회사에 들어가야 하지?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 어딘가에 하루빨리 소속되어서 정기적인 돈을 받는 것이었는지 궁극적인 회의감에 빠졌다. 그리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자소서를 쓰면서도 회피해왔던 질문을 똑바로 응시했다.
더 이상 네모난 지원자격란에 동그란 나를 구겨 넣거나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서를 쓰고 싶지 싫었다.
이후 내가 한 일은 공부다. 의미 없이 하던 자소서 작성을 멈췄다. 집 근처 중고서점에 가서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책들을 읽었다. 그중 몇몇 문장과 이야기에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고 나선, 또 관련된 인터뷰와 글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다. (읽는 동안 가슴이 뛰었던 책 중에는 <손을 잡는 브랜딩>이 있다.)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던 마케팅에 대해서도 맨땅에 박치기하며 공부했다. 과거의 나는 퍼포먼스, CRM 등 마케팅이 이리 다양한 건지도 몰랐다. 앱스플라이어와 에이블리가 했던 퍼포먼스 마케팅 관련 한 웨비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는 용어 투성이지만 너무 재밌는 거다. 일시정지를 눌러가면서 ROAS, LTV 같은 말들을 하나하나 검색하면서 봤다.
인풋을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렴풋한 틀이 잡혔고, 과거 내가 재밌게 해왔던 활동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지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멋진 사람들의 커리어와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스타일도 깨닫게 되었다.
일정한 직업을 잡아 직장에 나간다는 뜻의 취업. 취준생이라는 타이틀 하에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나.
약 3개월 간 경험한 나의 취준은 멋들어진 대기업 정규직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했지만 돌고 돌아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지극히 성공적이었다.
곧 시작되는 일이 내 생각만큼 즐겁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차례의 방황기가 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제 들린 스타벅스 매장의 배너 카피처럼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 좋아하다 보면 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지 않을까.